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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사자왕의 억지 이유

 

 

칼럼

 

 

                                 사자왕의 억지 이유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곰과 원숭이와 토끼를 시종으로 거느리고 있던 사자왕은 함께 지내보니 곰은 미련하고, 원숭이는 교활하고, 토끼는 눈치만 살피면서 일하기를 싫어하자, 사자왕은 구실을 만들어 몽당 잡아 먹을려고 생각했다. 사자왕은 세 시종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는지 시험해 볼테니 내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해라!” 먼저 곰 앞에 가서 커다란 아가리를 짝 벌리고 “내 입에서 무슨 냄새가 나느냐?” “예, 대왕님, 비린내가 어찌나 고약한지 맡기조차 어렵습니다.” 사자왕은 기다렸다는 듯이 “에끼, 이 미련한 놈. 왕의 체면에 먹칠을 했으니 넌 죽어 마땅하다!” 사자왕은 곰을 잡아 먹었다. 그리고는 또 아가리를 벌리고 원숭이에게 똑 같이 물었다. “냄새가 정말 향기롭네요. 향수인들 어찌 이런 냄새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에끼. 이 교활한 놈, 왕을 속이려드니 네 놈도 죽어 마땅하다!” 사자왕은 원숭이도 잡아 먹었다. 역시 토끼에게도 물었다.

 

 

토끼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왕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요새 감기에 걸려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습니다. 감기가 좀 낫거던 다시 시험을 치르겠습니다.” “뭐라고?” 사자왕은 하는 수 없이 토끼의 요구를 받아 들였다. 밖으로 나온 토끼는 깊은 산속을 향해 줄행랑을 쳤다. 이 우화에서 곰과 원숭이를 잡아 먹은 사자왕의 이유는 억지로 꾸며낸 구실로서 「충족이유율」의 논리적 요구에 배치되는 것이다. 그런데 충족한 이유를 들이댄 토끼에게는 「충족이유율」을 위반할 수 없어서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충족이유율」이란 논증 과정에 있어서 어떤 판단이 진리로 확정되려면 충족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사고의 법칙이다. 「충족이유율」은 우리들이 사고할 때 반드시 충족한 근거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즉 충족한 이유에 의거해야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정확한 판단을 이유로 삼아야만 정확하게 논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고을에 표독한 여인이 있었는데, 여인은 늘 병에 시달리는 남편이 싫어져서 독약을 먹여 살해해 버린 후 집에 불을 지르고 통곡하면서 남편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하였다. 여인의 살인 행위를 짐작한 남편의 친구들은 이 일을 관가에 알렸다. 사또는 사건의 전말을 듣고 나자, 돼지 두 마리를 끌어다가 한 마리는 죽였다. 그리고는 죽은 돼지와 산 돼지를 장작더미 속에 놓고 불을 붙였다. 불이 다 꺼진 후 검사해 보니 죽여서 넣은 돼지의 입이나 코 안에는 재가 들어가 있지 않았으나, 산 채로 넣은 돼지의 코와 입안에는 재가 들어가 있었다. 사또는 사건 현장에 가서 죽은 남편의 시체를 보니 코와 입안에는 재가 들어 있지 않았다. 사또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이 시체는 불에 타 죽은 것이 아니오. 불에 타 죽은 사람은 연기 속에서 숨이 막혀 바삐 호흡을 하기 때문에 코와 입안에 꼭 재가 들어가게 되는 것이오. 그런데 이 시체의 코와 입안이 깨끗한 것은 무엇때문이겠오?” 사또의 명철한 판단에 범행이 드러난 여인은 남편을 살해한 죄를 인정하였다.

 

 

여기에서 사또가 내린 판단 즉 「이 시체는 불에 타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판단이 정확한 까닭은 그 근거가 충족하기 때문이다. 「충족이유율」을 위반하는 논리적 오류는 주로 근거가 진실하지 못하며 근거와 판단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없으면 근거가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근거가 진실하지 못하면 「충족이윤율」을 위반하게 된다. 한양의 한 정승에게 얼뜨기 아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계집종을 사모했다. 하루는 얼뜨기가 새벽에 일어나 계집종에게 물었다. “지난밤 꿈에 나를 봤지?” “난 꿈에 본 일이 없어요” “난 꿈에 너를 봤는데 너는 나를 보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구나” 계집종이 끝까지 본적이 없다고 하자 얼뜨기는 애비한테 고자질했다. “저 계집애에게 곤장을 쳐주세요, 지난밤 꿈에 난 계집애를 봤는데 저 계집애는 꿈에 나를 보지 않았다고 우기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애비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라 “서로 만나 봤는데 어찌 한쪽에서만 볼 수 있단 말인가! 저 계집종에게 곤장을 매우 쳐라!” 여기에서 「나는 꿈에 계집종을 봤다」는 얼뜨기의 근거와 「계집종이 꿈에 나를 봤다」는 판단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이 없다. 따라서 이것은 「충족이윤율」을 위반한 것이다. 판사는 이 정도의 논리학 지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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