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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군주의 독선적인 정치는 위험하다

칼럼

 

 

                  군주의 독선적인 정치는 위험하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군주의 독선적인 통치나 싸움은 권력에 대한 야욕이나 지배층의 권력 쟁탈에 그칠뿐 절대로 조명을 받지 못한다. 반대로 가흑한 착취에 저항하여 일어난 민중의 봉기는 한 때에는 욕을 먹었다 하더라도 후세에는 높은 평가를 듣게 마련이다. 한(漢)나라가 위(魏), 촉(蜀), 오(吳)로 쪼개져 위주 조조와 촉주 유비가 싸울 때 유비는 언제나 백성을 어루만지고 위로했다. 점령지에 입성해서도 백성들을 괴롭히거나 재물을 약탈하는 장수나 병사는 가차없이 목을 쳤다. 심지어는 유비는 항복하지 않는 적군의 장수도 달래면서 항복을 받아내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조조는 유비와 달랐다. 관구검도 지방의 태수를 지내면서 뇌물을 좋아해 백성들의 인심을 얻지 못했고, 결국 도망가다가 자신의 부하의 손에 허망하게 죽고 말았으니 부하나 백성의 관리에는 실패한 인물이다. 반면 사마사는 백성의 마음을 거두는 능수였다. 고평릉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그가 사마의와 함께 모든 행동을 계획했는데 사마소는 낌새를 차리지 못했다. 거사 전날 사마의가 아들들을 살펴보니 사마소는 잠자리에서 뒤척이는데 사마사는 평소나 다름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사마의는 감탄했다. “이 아이가 쓸만하구나!” 이때 사마사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평소에 자기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을 3000명이나 비밀히 모아 두었던 것이다. 거사 당일 3000명 용사들이 불시에 모여 들자 사람들은 모두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아버지 사마의 조차도 몰랐다.

사마사가 낙양 부근에서 농사를 짓는 군사들 속에서 미리 무리를 모아 놓았던 것이다. 그런 개인 군사가 없었더라면 고평릉 반란은 성공할 수 없었다. 권력을 잡은 다음에도 그는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데 신경을 써서 주위에서 그를 따르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평소에 백성들의 인심을 얻었던 것이다. 그는 관원들에게는 엄격하고 매우 독한 사람이지만 백성들은 편안하게 생활을 했다. 위나라 때 여러번 사마씨 집단을 몰아낼 반란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불발에 그치거나 쉽게 실패하고 만 것은 백성들이 반대파를 따라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조는 공로가 중국을 뒤덮는 위엄이 세상에 떨쳤으나 속임수에 능통하고 권모술수에 의지해 정벌을 그치지 않았으므로 백성들은 조조를 두려워할 뿐 그를 신뢰하지 않아 민심을 얻지 못했다. 조비, 조예는 조조의 뒤를 이어 가혹한 정치를 하면서 안으로는 호화 궁궐을 짓고 밖으로는 동서로 뛰어 다니며 전쟁을 하느라 한 해도 편안이 보낼 수 없었으니 백성들은 그에게 등을 돌린지 오래였다. 그런데 사마의 부자는 권력을 잡은 뒤 가혹한 제도를 없애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어려움을 풀어 주어서 크게 민심을 얻었기 때문에 회남(淮南)에서 세 번이나 반란이 일어났으나 속으로 근심하지 않아도 되었고 위주 조모가 죽었지만 사방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촉나라는 유비와 제갈량이 사망한 뒤 유비의 아들 유선은 환관의 농간에 빠져 충신의 간언을 듣지 않자 올바른 명령이 떨어지지 않는데다가 백성들이 등을 돌리면서 위나라 장수 등애에게 잡혀 망국의 비운을 맞았다. 오나라 황제 손화 역시 백성들을 무척 괴롭혔다. 사치가 심해 그가 쓰는 호화 물건들을 공급하느라 양주의 백성들이 배를 타고 물길을 거슬러 와야 하는가 하면 나라에서는 지출할 돈이 없어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집을 잃고 들판을 헤매이고 있는데도 손화는 후궁의 궁녀를 1000명이나 두어 이들이 쓰는 재물을 조달하느라 백성들이 무척 고달팠다. 결국 오나라도 위나라에 망하자 사마염은 삼국을 통일하여 진(晉)나라를 건국했다.

북한은 적화통일 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로 연일 한국을 위협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의 안보는 매우 불안하다. 대선 당시 국민통합을 강조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친북 정책을 강행하면서 좌파(특히 친북)와 우파간의 갈등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이러다가는 자칫 시리아처럼 내전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사상)만을 주장하면서 국민의 뜻을 거스리는 것은 대통령 본인에게도 유익하지 못하다. 우리는 평화조약을 맺은 후 공산화된 베트남의 멸망을 좋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본 칼럼은 구미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칼럼리스트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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