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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문] 곡선의 삶, 그리고 가을과 인연

시인/수필가 김병연

직선은 두 개의 점을 잇는 가장 짧은 하나의 선이다. 우리는 이제 너무도 직선에 친숙하다. 직선적 환경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낮에는 사냥하고 밤에는 쉬던 시대의 시간은 낮과 밤으로 구별되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욕구의 증가는 시간을 톱니바퀴로 표시하는 직선의 시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시간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결국 단위시간에 누가 더 많은 것을 갖는가를 계량하게 되고, 크고 작음의 비교는 한없는 욕망을 만들어 나갔다. 결국 기준이 되는 직선의 수가 점점 늘어나서 수많은 직선의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을 찾아 직선으로 움직인다. 폭포가 그렇고 유리창의 빗물은 직선을 그린다. 하지만 강물은 굽이굽이 돌아 흐른다. 높은 산정에 올라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내려다보면 저 멀리 구불구불 은빛으로 반짝이며 흐르는 강물을 보게 된다.

 

평탄한 평야에서도, 산과 산 사이에서도 구불구불 흐르는 강은 평화를 느끼게 한다. 구부러진 강은 물을 공급하여 주변에 마을을 만들었다. 강은 휘어져 흘러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키운다. 강은 굽어서 온전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그러나 출발점도 도착점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지만, 휘어진 강에서 바다가 잘 보이지 않듯이 목표는 멀리 있는 것만 같다.

 

물의 양이 많고 거세면 더욱 굽어져, 곡류(曲流)를 만들어 가야할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부딪치면 피하고, 멀어지면 인내하고, 늦어져도 서두르지 않으며 묵묵히 자기의 일을 다하는 강물이다.

 

휘어져 이루어지는 목적 달성은 완벽하다. 강은 물론이고 뒤틀린 소나무에서도 궁극적 온전함을 본다. 대나무 숲에 들어가면 직선뿐인 듯싶지만, 대숲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끝은 적당히 굽어 쉼 없이 바람에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직선과 곡선의 어울림 속에서 아름다움과 여유를 보게 된다.

 

멀리가려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직선의 시대에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도 크다.

 

어느 경우에도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강물은 어떠한 장애물에 부딪치며 굽이굽이 돌아가도 결국은 바다에 도착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그렇게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여유롭게 그리고 도도하게 구불구불 돌아 흐르는 강물 같은 곡선의 삶을 살 수는 없는가.

 

너무도 많은 수사들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을을 노래한다. 시인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아름답고 낭만적이고 풍요로운 가을을 노래한다.

 

이 가을 가로등 불빛조차 보이지 않을 때까지, 외로움의 끝까지 걸어가 보자. 삶의 미로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정신과 육체가 솜털처럼 가벼워질 때까지 끝없이 걸어가 보자.

 

인연에는 아름다운 인연, 즉 가연도 있고 차라리 인연이 없었으면 좋았을 악연도 있다. 부부간의 백년가약이나 국경을 초월한 백제의 서동과 신라의 선화공주의 만남은 가연이고, 보험료를 타내기 위해 배우자를 살해하거나 학연·지연 등의 인연을 범죄행위에 이용하는 것은 악연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인연도 많고 상상하기조차 힘든 악연도 있다. 인연은 서로의 생각과 선택에 따라 가연이 될 수도 있고 악연이 될 수도 있다. 세월이 흘러도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아름다운 가치로 가꾸어 나가도록 해야 한다. 해마다 칠석이면 어김없이 만나는 견우성과 직녀성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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