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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남이(南怡) 장군 제5회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남이(南怡) 장군 제5

 

       남이(南怡) 장군

 

 

그런데 이시합의 첩의 딸이 주기(州妓 : 에 속한 妓生)로 있었다. 그는 재색과 가무가 출중하여 길주(吉州)에 잔치가 있을 때면 놓치지 않고 불려내 인기를 모으는 기생이었다. 이시애 일당은 이 기생의 손을 빌러 강효문과 설징신을 꿀물처럼 녹이게 한 다음 군졸을 불려 들여 두 사람을 목베기로 하였다. 길주 목사 설징신은 강효문을 환대하여 밤늦도록 주연을 베풀었고, 밤이 이슥해지자 강효문과 설징신은 기생 한명씩을 끼고 치마폭에서 단꿈을 꾸게 되었다.

이시애 등의 작전대로 이시합의 첩의 딸이 강효문의 침실에 들게 되었다. 이시합은 관아 부근에 60명의 부하를 매복시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가 나면 즉시 출동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신호는 예상했던 대로 빨리 왔다. 강효문의 침소에 들었던 이시합의 첩의 딸은 안으로부터 잠겨진 문을 모두 열어 젖힌 다음 밖으로 와 문이 다 열려 있음을 손짓으로 알려 주었다. 대기하고 있던 군사들이 안으로 쳐들어가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발가벗고 자는 두 사또를 힘 안들이고 목을 베어 죽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날 이시애는 왕(세조)에게 거짓 장계를 올려 시간을 벌기 위한 작전을 펴는 한편 유언비어에 속아 흥분되어 있는 군중들을 끌어 들여 함길도 일대는 자기들이 다스려야 한다고 반기를 들은 것이다. 이시애의 음모에 말려들어 모인 북도인들의 수효는 3만이 넘었다.

남도인들이 북도인들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수륙 양면으로 쳐들어온다는 뜬 소문에 넘어간 이들은 목숨을 버리기로 작정하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먼저 경관(京官) 출신 사또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고 관아들을 하나 하나 손아귀에 넣자 그럴 때마다 관군들 중에서도 항복해 오는 사람이 많아 이시애의 세력은 날로 늘어만 갔다.

처음에는 병기가 없어 농기구까지 동원되었으나 한 달도 못가서 기치창검이 제법 갖추어져 반군의 위엄이 서게 되었다. 이시애는 벌써 임금이 된 기분이었다. 이러한 이시애에게 계속 희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여진족에게 구원군을 요청하러 갔던 밀사가 돌아와 여진이 지원군을 보내주겠다는 확답을 받았다는 소식이요, 또 하나는 조정 관군의 도총사 이준의 10만 대군이 출정하기에 앞서 먼저 민심수습의 책임을 지고 선발대로 나온 이징옥이 투항해 왔다는 것이었다. 이시애는 이징옥 장군을 반갑게 맞으며 조정의 현황을 상세히 물으니 이징옥 장군은

조정은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습니다. 이러한 기세로 밀고 들어가면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하였다. 이시애는 백만 원군을 얻은듯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

허허허. 그러면 그렇지. 지금 하늘이 우리를 도우고 있구만...”

이시애는 의기양양해졌다. 이제 곧 임금이 된다는 기분에 도취되어 있었다. 이튿날부터 이시애는 병력을 휘동하여 며칠만에 함흥 이북의 땅을 모두 석권해버렸다. 이 사이 이준의 10만 대군이 진격해 와 함흥 근교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이준이 거느린 관군과 이시애 반란군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이시애는 10만 관군의 위력을 잘 아는지라 정면 충돌을 가급적 피하고 사면 팔방에서 일진일퇴하는 유격전술로 관군을 맞아 싸웠다. 첫 전투에서는 관군의 희생이 더 많았으나 숫적으로 우세한 관군은 공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 진격해 나갔다. 이시애의 반란군은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이라 밀려오는 관군의 기세에 눌려 후퇴를 거듭하여 흥원까지 물러나게 되자, 이시애는 더 이상 정면 충돌을 주저할 수가 없었다. 이시애는 전열을 가다듬어 홍원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였다.

일대 격전 끝에 쌍방의 희생자는 1천명이 넘었다. 정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이시애는 이 싸움에서도 패하여 북청에 진을 치고 또 한번의 결전을 다짐했다.

이준이 이끄는 관군은 4개 편대로 나누어 일군은 허종(許琮)에게 맡기어 서방에서 공격토록 하고 또 일군은 김교에게 주어 우회하여 북방에서 공격토록 하고, 어유소의 일군은 동쪽 해로로 상륙하여 공격토록 하고, 이준 자신은 강순, 남이 등과 함께 정면을 공격하였다.

죽고 죽이는 이비규환의 전투가 일주야를 끌며 계속되었다. 유혈이 강을 이루고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이 전투에서 반란군의 병력은 반 이상이 희생되었고, 관군도 그와 비슷한 희생자를 냈으나 전체 병력에서 워낙 우세하였기 때문에 이시애의 반란군이 치명타를 입은 셈이었다.

반란군은 계속해서 패주하였다. 이시애는 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할 각오로 길주의 가족과 재물을 모두 마차에 싣고 급히 달려 경성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징옥 마차를 가로막은 군사가 있었다. 김종서 장군이 보낸 관군이었다. 도망할 길이 막힌

이징옥 장군은 자신의 앞에 놓인 죽음이란 현실을 겸허히 받아드려야 했다. 어린 임금(단종)을 몰아내고 왕권을 탈취한 세조에 대한 불만이 있어 이시애의 반란에 동조하긴 했지만 결코 권력에 탐욕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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