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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남이(南怡) 장군 제4회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남이(南怡) 장군 제4

 

남이(南怡) 장군

 

 

남이 장군이 이징옥 장군을 구하기 위해 적진으로 돌진할 때 그의 부장 이강언이 만류하여 이렇게 말했다.

적진이 견고하여 돌파는 불가능합니다. 뛰어들면 죽음이 불보듯 뻔하니 가지 마십시오

하지만 남이 장군은 이강언에게

그럴수는 없다. 이미 죽기를 각오하고 전쟁터에 나온 마당에 어찌 살기를 바라겠느냐

하고는 적진으로 향해 돌진하여 적에게 포위된 이징옥 장군과 합류하였다. 이징옥 장군이 고전분투하며 적과 싸우고 있는 동안 남이 장군이 대군을 이끌고 건주 여진의 본거지를 항해 진군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여진군은 포위를 풀고 골짜기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이징옥 장군과 그의 군사들은 살아날 수 있었다. 많은 부하를 잃고 지친 몸으로 본영으로 돌아온 이징옥 장군은 남이 장군을 불들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나는 자네를 형제와 같이 생각할 터이니 자네도 나를 형제와 같이 여겨 달라.”

이 사건 후 이징옥 장군은 전공을 인정받아 세종대왕은 그를 종이품인 가정대부동지중추원사(嘉靖大夫同知中樞院事)의 품계에 올렸으며 이징옥 장군은 계속해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진군의 반격은 거세졌고, 조선군에서는 전상자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러던 중 이징옥 장군이 1만의 군사로 부령성을 지키고 있는데 여진군의 2만 병력이 쳐들어 왔다. 그러자 수적으로 불리하다고 판단한 이징옥 장군은 김종서 장군에게

“2만의 적을 대적한다는 것은 무리할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겠소?”

하고 묻자 김종서 장군은

전면전은 피하고 성을 굳게 지키면서 수비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이징옥 장군이 이를 받아 들이지 않고 결사전에 지원하는 용사 수백명을 뽑아 성밖으로 나갔다. 조선군이 성문을 열고 나오자 여진군도 결사대를 뽑아 출동시켰다. 양쪽 결사대끼리 혈투가 벌어졌다. 혈투 끝에 여진군 2백여 명이 전사했다. 이 때문에 여진군의 사기가 떨어졌고 결사대를 이끌고 있는 장수 우로개는 겁을 먹고 부하들에게 퇴각을 명령했고 여진족의 결사대는 물러났다.

이때 여진족 추장이 이징옥 장군 앞에서 무릎을 끓고 복속을 맹세 하였다. 이징옥 장군의 이 같은 활약에 힘입어 김종서는 몇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긴 끝에 두만강 변방 6진성을 완성하여 두만강 일대의 땅을 국경으로 정하게 되었다.

여진족을 퇴치한 후 한동안 평화롭던 조선 정국에 또 한차례 회오리 바람이 불어 닥쳤다. 단종을 몰라내고 왕이 된 수양대군은 전쟁을 중단하고 문화를 숭상하며 아름다운 풍속을 조성하려고 노력했지만 길주 출신의 호족 이시애는 아우 이시합과 공모하여 난을 일으켰다. (세조)은 즉시 토벌군 편성을 명령하였다. 도총사에 귀성군 이준, 부총사에 조석문을 임명하였으며, 그 밑에 어유소, 남이, 강순, 허종등 무예가 출중한 장군을 모두 배속시켰다. 토벌군의 병력은 10만 대군이었다.

한편 이시애는 대대로 길주에서 살아온 호족의 아들로서 친척이 번성하여 길주에서도 세도가 당당하였다. 고을 수령이 부임해 오면 맨 먼저 이시애를 찾아가 부임 인사를 하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었다. (세조)의 중앙집권강화정책이 척척 시행되자 그들은 불만을 품게 되었으며, 북도의 수령들을 경관(京官)으로 대체하고 호패법을 강력히 시행하자 이시애의 불만은 더욱 커져가기만 했다. 이시애는 동생 이시합과 매부 이명효와 함께 은밀하게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먼저 유언비어를 퍼뜨려 인심을 흔들어 놓을 작전이었다.

하삼도(下三道) : 충청. 전라. 경상도) 사람들이 우리 북도 사람을 야인과 같이 취급하며 몰살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다’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군사들이 이미 후라도(後羅島)까지 쳐들어와 왔다’ ‘황해도 군사들까지 우리를 치기 위해 출동해서 이미 설한령(雪寒嶺)을 넘었다고 한다이러한 뜬 소문은 그 진원지조차 모른 채 꼬리에 꼬리를 물어 솜덩이처럼 불어나 퍼지기 시작했다.

원래 세상 민심이 흉흉하던터라 북도(北道)의 사람들은 이 소문을 그대로 믿어 버렸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들은 우리가 이대로 앉아 그대로 죽음을 당하느니 차라리 병장기를 들고 일어나 쳐들어오는 남도(南道) 사람들을 없애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다.

친척들도 이시애를 충동질하였다. 저렇듯 혈기가 넘치는 청년들을 규합하여 일어나는 것이 어떠냐고 떠들어 댔으나 이시애는 은근히 더 성숙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길도 관찰사 오응은 휘몰아치는 유언비어의 회오리 바람을 막기 위해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절도사 강효문을 파견하여 민심 수습에 나섰다. 강효문이 길주에 도착한다는 소문을 들은 이시애, 이시합, 이명효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면밀한 작전계획을 세우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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