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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분노의 세월 제11회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분노의 세월 제11

 

 

분노의 세월

 

 

대군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사옵니까.”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니 참으로 고맙소!”

아직은 왕이 살아 있으니 당분간 대군께서는 안전한 곳에 머물고 계시옵소서.. 왕이 폐위되면 곧 바로 대군을 모시려 오겠사옵니다.”

하고는 을불乙佛을 조맥 남쪽에 있는 민가인 오백남이란 사람의 집에 머물게 하였다. 창조리는 하루 하루 마음이 조급했다. 어서 빨리 봉상왕을 폐위시켜야 하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안타깝고 초조한 마음에 국상 창조리는 하루가 한 달 같기만 느껴졌다.

그러나 다행히 며칠이 가지 않았다. 봉상왕이 도성 밖에 있는 후산後山으로 사냥을 가게 된 것이다. 창조리와 조불, 소우 세 사람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왕과 함께 사냥길에 올랐다. 이 때가 서기 3009월이었다. 오늘의 일이 성공만 한다면 자신들의 뜻이 후대에까지 칭송받을 것이지만 만약 실패하는 날에는 자신들을 비롯한 일가족이 모두 참살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4

 

사냥터에 도착한 봉상왕은 평소의 포악한 성질대로 짐승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싹쓸이 하듯이 모조리 잡아 죽였다. 그 광경은 옆에서 보기에도 잔인할 정도였다. 한참을 짐승들을 쫒아 말을 달리던 봉상왕은 심신이 피곤했던지 잠시 행궁 안으로 들어가 몸을 쉬었다. 왕이 행궁 안으로 들어가자 창조리는 신하들을 불어 모았다. 그리고는 조불과 소우에게 말했다.

두 대감은 나와 뜻이 같음을 추호도 의심하고 싶지 않소. 그러니 두 분 대감도 내 뜻을 따라 주기 바라오!”

왕을 폐위시키는 일이라면 이미 국상 대감에게 저의 소신을 피력한바 있으니 그 소신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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