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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아름다운 사회 = 믿음은 불신을 붕괴시키는 핵심

 



아름다운 사회

 

 

                 믿음은 불신을 붕괴시키는 핵심

 

 

                                     권우상 명리학자

 

 

밤이 가고 새벽이 오면 사람은 깊은 잠에서 깨어난다. 만일 깨어남이 없다면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기에 깨어난다. 깨어남은 즐거움이다. 이 깨어남이 오늘도 내일도 반복되는 순간이 인생이다. 사람은 잠시라도 수면의 긴 굴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영영 갇혀 있는 상태를 죽음이라고 한다. 이렇게 밤이 되면 자고 새벽이 되어 깨어남을 향수하게 되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벽이 되어 깨어남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이 있다. 입놀림이다. 말을 하는 것이다. 하루의 일과는 깊은 흐름의 연속이지만 말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깨어난 아침에 자기 스스로 무슨 말을 맨 먼저 했는가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잠꼬대의 연속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확실하게 자기 스스로 무슨 말을 하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새벽에 깨어나면서 자기 발신의 목소리를 깨우쳐 아는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불도의 구도자는 그 첫 음성이 옴(: om)이 되게 하였다. ()은 완성이요, ()은 깨우침이기에 옴을 첫 발음으로 불렀던 것이다. 정말 우리들이 깨어나서 깨침을 희원하고 완성을 발원한다면 하루 하루 그 생활이 즐겁고 밝아질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견탁이라는 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견탁을 한자로 쓰면 볼 견(), 탁할 탁()자를 쓴다.

오탁(五濁)속에 견탁(見濁)이 있는 것이지만 견()이란 견해(見解)이기도 하고 한 발 더 나아가서 사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견해의 차이가 있으면 함께 어울릴 수가 없다. ()이란 맑지 못한 흐림이다. 물들어 버린 상태, 오염된 현상을 뜻한다. 즉 올바른 법을 착각하는 고집인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견해의 고집은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 독선적인 이해관계에서 비롯하는데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쇠가 녹 쓰는 것도 쇠를 버리면 녹이 일어나지 않듯이 잘못되는 견해도 모두가 마음을 떠나면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잘못되는 견해를 옳다고 우기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아집(我執)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악한 것과 선한 것은 항상 공존하고 있다. 악한 힘이 우세하니 선한 힘은 존재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것은 견탁인 것이다. 악한 것도 선한 것으로 변용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선하게 살려면 견()의 사유를 정견으로 인발시켜야 한다. 세상을 배금사상, 황금만능이 지배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색견(色見)에 걸린 것이고 공견(空見)의 철학을 배척하는 견탁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다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보다 동물(애완견)의 생명에 더 비싼 값을 매기겠다는 견해는 필자로서는 수용할 수 없다. 믿음은 불신의 벽을 붕괴시키는 핵심이다. 내가 너를 믿지 못하고 네가 나를 믿지 못하면서 대립의 칼날만 세운다면 사회는 더욱 혼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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