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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분노의 계절 제1회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분노의 계절 제1

 

 

       분노의 세월

 

                  1

 

 

때는 서기 2923월이었다. 고구려의 제14대 봉상왕은 왕위에 오르자 부왕의 탈상도 하지 않은 몸으로 안국군 달가를 살해했다. 달가(達家)는 부왕인 서천왕의 동복同腹 아우로서 봉상왕의 숙부였다. 달가는 문무를 겸비한 장수로 서기 280년에 숙신肅愼을 물리친 공로로 안국군에 책봉되었고, 그 이후에도 행정과 군사의 중요한 직책인 태대형太大兄 작위爵位에 있었고 그후 다시 대대노大對盧에 올라 왕 다음의 최고 직위를 맡고 있었다.

달가達家는 부왕인 서천왕의 명령을 받아 숙신肅愼 뿐만 아니라 양맥梁貊 지역을 정벌하여 고구려의 통치하에 두는 혁혁한 무공을 쌓았다. 이러한 탁월한 정치력과 덕망으로 그는 자치구를 잘 통솔하여 백성들의 신망이 매우 높았다. 누가 보아도 차기 고구려의 왕으로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봉상왕은 태자시절부터 달가達家의 명망을 시기하고 질투했다. 그러다가 왕위에 오르자 달가에게 억울하게 반역죄의 누명을 뒤집어 씌워 죽일려고 하였다. 죄명은 반란 음모를 주도하여 왕권을 탈취할 계획을 했다는 것이다. 봉상왕은 태대사자太大使者 벼슬인 자봉子奉에게 안국군이 스스로 역모를 토설하도록 문초하라고 지시했다. 최고의 벼슬인 대대로大代盧를 한참 아래인 태대사자太大使者 벼슬에게 문초를 지시한 것은 태대형太大兄, 주부主簿 벼슬에 있는 신하들이 무고한 달가를 죽일 수 없다고 문초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잘못하면 자신들도 역모로 몰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벼슬을 내려놓고 초야草野로 돌아가 살았다.

궁궐 마당에 형구形具를 차려놓고 달가達家를 형틀에 묶어 불에 벌겋에 달군 인두로 혹독한 고문을 하면서 있지도 않는 역모를 토설하라고 다구쳤다. 하지만 달가는

나는 역모를 꾀한 적이 없으니 죽어도 토설할 것도 없다.”

하자 봉상왕은 형리에게 더욱 가흑한 고문을 지시했다. 달가에게는 더욱 참흑한 고문이 가해졌고 결국 사지四肢가 갈기갈기 찢기면서 달가達加는 고통스럽게 죽었다. 죽으면서 그는 봉상왕에게 말했다.

너도 언젠가는 나처럼 참혹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달가가 죽자 갑자기 맑은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모여 들더니 번개가 치고 천둥이 쳤다. 조정 신하들은 하늘이 분노했다면서 억울한 누명으로 참혹하게 죽은 달가達家를 몹씨 애통해 하였다. 백성들도 폭군이 덕망 높은 달가를 죽였다고 하면서 가슴을 치고 한탄하였다. 벼슬을 버리고 초야로 돌아가는 신하들도 있었다. 봉상왕이 달가를 죽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은 고구려가 망할 징조라고 하면서 봉상왕의 폭정을 비난했다.

모든 백성들은 달가達家를 외적을 물리칠 수 있는 유능한 인물로 믿었는데 그가 죽자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이 같은 불안은 곧 백성들의 민심 이반으로 나타나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으로 치달았고 고구려의 정국은 큰 혼란에 빠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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