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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실패한 소설가 제10회



권우상(權禹相) 명작 소설 = 실패한 소설가 <10>

 

 

     실패한 소설가

 

 

이건 선생님 약력입니까?”

나는 전단지를 보였다.

그렇습니다.”

이름은 김가림씨구요?”

신문사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데뷔하셨는데 소설가로 활동하지 않으시구 왜 마술을 하게 됐습니까?”

처음엔 데뷔만 하면 소설가로 먹고 살 수 있으리란 포부를 가졌는데 막상

데뷔를 해 보니 어림없는 소리였지요. 제가 소설가로 데뷔해 5년을 기다렸지만 원고청탁 한 장 들어오는 곳이 없더군요. 그것이 무슨 소설가 입니까. 이건 뭐랄까 산모로 말하면 아기를 낳아 놓고 아기에게 이제 세상에 태어났으니 네 혼자 살아가라고 하는 것과 같지 뭡니까. 이럴 바에야 신문사에서 소설가로(신춘문예로) 데뷔한다는 말은 하지 않아야 맞죠.”

나는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남자는 다시 말했다.

먹고 살기 위해 소설가의 꿈을 접고 마술사가 됐습니다. 마술로 먹고 산다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소설가 보다는 먹고 살만 합니다. 소설로는 돈 한 푼 벌지 못하지만 마술은 그래도 돈이 되죠.”

선생은 그래도 소설가로 데뷔라도 했지만 나는 소설가로 데뷔할려고 평생동안 소설을 썼지만 예순이 넘도록 데뷔조차 못했습니다.”

소설가로 데뷔하면 뭘 합니까. 나를 보십시오. 이것이 소설가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가로 데뷔해도 직업적인 소설가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열 사람 중에 한 두 사람도 안 된다고 했다. 대부분 교사나 다른 직업으로 먹고 산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신문사의 신춘문예 중독병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 중독병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많은 소설중에 단 한 편만을 뽑기 때문에 천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당선되기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도 천운으로 당선됐다고 했다.

나는 그와 헤어져 강인숙과 함께 불암사를 향해 산을 오르면서도 소설가로 데뷔했으나 마술사로 변신한 그 사람의 모습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사람도 나처럼 실패한 소설가였지만 그래도 그 사람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로 데뷔한 것이 나보다 훌륭해 보였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산과 산이 호형호제 하면서 형의 어깨위에 얼굴을 들고 있는 동생처럼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어느새 불암사 앞에 다다랐다. 불암사는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불교였다. 법당에 들어갔지만 하루에 삼천 배를 한다는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의 뜻이 이루어져 더 이상 부처님의 가피가 필요 없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아내와 닮은 그 여자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나를 본 것 같았다. 강인숙과 산길을 내려오면서 나는 이제 단편

소설 실패한 소설가를 끝으로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작심했다 그날 저녁 나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왔다. 가슴이 짓눌러 오는 통증을 느끼며 거실 쇼파에 허리를 꾸부리고 앉았다. 강인숙은 잠시 외출중이었다. 이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엉금엉금 기어 현관문을 열자 우편집배원이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신문사에서 보낸 신춘문예 소설공모 당선통지서였다. 나는 주저앉아 오열을 터뜨렸다. 나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 나는 당선 통지서를 손에 쥐고 황홀한 꿈속에 잠겨 들었다. 포근한 안식속에 빠져 들었다. 나는 이제 그토록 갈망했던 소설가 데뷔와 함께 깊고 깊은 잠에 빠졌다. 나는 강인숙에게 다음과 유서 한 장을 남기고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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