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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명작소설 = 실패한 소설가 제5회




권우상(權禹相) 명작 소설 = 실패한 소설가 <5>

 

 

실패한 소설가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은빛 물결이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그녀는 화필을 들고 이젤 앞에 서서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어느 정도 그림이 완성된 것을 본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죽을려고 했는데 선생님 때문에 실패했군요.”

인생에는 실패가 늘 따르죠. 죽지 마시고 저와 말벗이 되어 주세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앞으로 나를 모델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면서 다시 입을 얼었다.



저는 일찍이 남편 죽고 혼자 고독하게 살았어요. 젊을 때는 고독해도 아이들 키우는 재미로 살았는데 아이들이 성장하여 떠나고 보니 그래도 남편 밖에 없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 놓았다. 그녀는 어릴 때 화가(畵家)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미술과에 들어 갈려고 했다.



그러자 그녀의 부모님은 화가를 반대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화가들은 그림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녀의 부모는 그림으로 먹고 살기가 어려운 빈궁한 화가가 되기를 반대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미술 교사가 되기 위해 교육대학에 들어갔고 30년동안 미술교사로 교단에 있다가 정년 퇴직을 했다. 그리고 해마다 국전(國展)에 응모했지만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려서 반드시 국전에 수상하여 화가로 데뷔할 것이라고 하면서 교사로 재직한 퇴직금은 연금으로 매달 받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다만 화가로 데뷔하지 못한 것과 외로움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 온 내가 왜 국전에 그토록 미련을 두고 있는 지 내 스스로 반문 할 때가 많아요.”

선생님도 저와 비슷한 처지군요. 미술과 소설이란 장르는 다르지만.”

선생님과 같은 처지라니요.”

사실 저도 소설가로 데뷔할려고 지금까지 소설에만 열정을 쏟아 왔습니다.”

소설가로 데뷔를 못하셨나요?”

.”



그래서 자살을 할려고 하셨나요?”

. 한데 선생님 이름은요?”

강인숙이라고 합니다.”

어느 학교에서 미술 교사를 하셨나요?”

예술고에서요.”

 


나는 강인숙과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에게 빨려 들어갔고 강인숙 역시 내가 무명 소설가임을 알고는 그녀 역시 나에게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내가 소설가로 등단하면 강인숙은 내가 쓴 소설에 삽화를 그리겠다고 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 유일한 생활수단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거기다가 건강까지 좋지 않아서 이중 삼중의 고통속에서 여지껏 살아왔다. 그런 가운데 강인숙을 만난 것이었다.

나와 강인숙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서로 친구가 되기로 했다. 나는 그녀의 아파트를 마음의 안식처로 삼았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늘 아파트에 들어 앉아 각각 다른 방에서 나는 소설을 쓰고 그녀는 그림을 그렸다. 무엇보다도 강인숙의 친구같은 친절함에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가장 고마워 한 것은 내가 진실로 소설가의 길을 걷는다면 언제나 같이하며 가르침을 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녀가 옆에 있는 한 나는 행복했다. 더구나 그녀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도록 경제적 정신적으로 도움을 준 은인이었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나와 같이 하겠다고 했고, 그녀가 없이는 내 존재를 생각할 수 없는 인생의 동반자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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