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문화ㆍ예술

권우상 중편 연재소셜 - 미녀 노아 제1부 제13회


권우상 중편 연재소설 제1부 제13

 

미녀 노아


고씨는 애간장이 끊어지는 심정으로 이미 숨이 끊어진 딸을 등에 업고 발소리를 낮춰 부엌으로 나갔다. 먼저 솥에서 시어머니의 밥을 퍼 따뜻한 방 아랫목에 묻은 다음 남편의 밥을 퍼서 반찬 몇 가지를 곁들여 함지박 속에 담았다. 그런 와중에도 눈물은 쉴새없이 볼을 타고 흘러 혹여 시어머니와 남편의 밥에 눈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릴까봐 고씨는 몇 번이고 얼굴을 돌려 혼자 고스란히 눈물을 받아냈다. 고씨는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남편이 일하고 있는 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편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밭둑에 앉아 아내가 차려 온 아침밥을 맛 있게 먹었다. 다른 날과는 달리 아내의 표정이 무척 어두워 보이기는 했지만 등에 업은 딸을 더욱 정성스럽게 안고 있는 것으로 봐서 딸이 칭얼거림이 어느 때보다 좀 더해서 그렇거니 하고 어림짐작만 할 뿐이었다. 남편이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비우자 고씨는 조심스럽게 등에 업었던 딸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지듯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흐흐흑.. 아니 와 그러노? 무신 일이고?”

 

 

 

남편은 갑작스런 아내의 눈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애가... 우리 애가... 흐흐흑..”

아내의 흐느낌에 놀라 남편은 땅에 눕힌 딸을 품에 안았다. 남편의 얼굴은 순식간에 흑빛으로 변했다.

이게 무신 일이고? 우찌된 일이고!”

흐흐흑...아침밥을 해서는 젖을 물릴라꼬 방에 갔심니더...흐흐흑.”

고씨는 품에 안았던 딸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이 불효막심한 것아! 우째 이리 일찍 간단 말이고? 일흔이 넘으신 할매를 놔두고 니가 먼저 간다 카믄 말이 되나...”

 

 


남편은 피눈물을 흘리며 어린 딸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보다 못한 고씨가 남편의 손을 잡고 함께 울부짖으며 매질을 말렸다.

이러지 마이소.. 지 명대로 살지 못하고 간 이 불쌍한 어린 것이 무신 죄가 있다꼬 때리기꺼지 합니껴? 흐흐흑.”

고씨가 남편의 손을 잡고 절규하던 순간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은 울음을 터뜨렸다.

응애! 응애! 응애!..”

 

 

 

남편과 고씨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땅에 눕혔던 어린 딸을 껴안았다. 기적처럼 죽었던 딸이 살아난 것이다. 딸의 죽음에 애통해 하던 남편과 고씨의 눈물은 금세 기쁨의 눈물로 바뀌었다. 죽었다 살아난 딸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부모의 품속에서 생긋생긋 귀엽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노아의 부모는 노아가 태어난 후 10년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노아는 무남독녀(無男獨女)로 귀염을 덤뿍 받으며 자랐다.

 

 

노아는 어릴 때부터 얼굴이 인형처럼 너무 예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입맛을 다시며 감탄하면서 귀여워했다. 노아는 일곱 살이 되면서 글 공부를 좋아했다. 그래서 천자문 책으로 늘 공부를 했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다. 하지만 노아 부모는 여자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게다가 여자가 글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아는 천자문을 달달 외우고 붓 글씨도 잘 쓰면서 열심히 글 공부를 했다.

 



노아가 열 두 살이 될 때 노아의 어머니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노아의 아버지는 작은 땅을 일구면서 노아를 애지중지 키웠다. 아들이 없으니 노아가 혼인할 나이가 되면 데릴사워라도 볼 생각이었다. 노아는 아버지가 어머니 없이 혼자 외롭게 사시는 것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어느듯 노아는 열 아홉 살의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했다. 정항(鄭恒)이 경상도 함안 부사로 부임해 온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계속>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