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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개혁 없으면 국가 발전 없다




칼럼

 

 

                    개혁 없으면 국가 발전 없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나라와 제()나라가 강성할 때 서쪽에 치우쳐 중원 제후들로부터 미개한 종족으로 취급받던 진()나라 효공왕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부국강병에 힘을 쏟았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진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중용하겠다고 널리 선포했다. 어느날 진나라의 새 역사를 쓰게 될 인물이 찾아왔다. ()나라 사람으로 성은 공손(公孫)에 이름은 위앙(衛鞅)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위앙은 날로 강성해지는 위()나라와 제()나라처럼 진()나라가 강성해지자면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러저러 하게 하라고 말했다. 효공왕은 위앙의 주장을 받아들여 새로운 법을 바꾸려 하자 귀족과 대신들이 반발했다. 위앙이 주장하는 개혁은 하()나라, ()나라, ()나라 법과 제도가 크게 달랐다. 그는 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개혁 반대파들이 반박했다. 하지만 백성들은 새법의 이득을 몰라 위앙의 주장에 대해 반발하자 효공왕은 실행을 결심하지 않자 위앙은 꾀를 냈다. 수도의 남문에 30자 길이의 나무를 세우고 선포했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금 10냥을 상금으로 준다별로 힘든 일도 아닌데 상금이 너무 후하다고 생각한 백성들은 수군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위앙은 상금을 50냥으로 올렸다.

 



그러자 한 남자가 나서서 나무를 메고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갔다. 남자가 북문에 이르자 위앙은 약속한 상금 50냥을 주었다. 많은 백성들은 새로 부임한 관원은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진나라를 개혁할 새로운 법령을 실행할 수 여건이 만들어져 새법이 공포되었다. 이때가 기원전 356년이었고 그 내용은 이러했다. 첫째, 치안을 강화하기 위해 = 다섯 집을 한 오(), 열 집을 한 십()으로 정해 서로 보증하고 감독하되 한 집에서 죄를 저질렀을 때 다른 집에서 고발하지 않으면 다섯 집 열 집이 모두 벌을 받는다. 외출하면 반드시 증명을 지니고 다녀야 하며 증명이 없는 자는 객주에 들지 못한다. 둘째, 재물을 늘리기 위해 = 식량과 무명 비단을 나라에 많이 바친자는 부역을 면제하고 농사를 짓지 않고 쉽게 돈을 벌려고 장사에 매달리는 게으름뱅이는 아내 자식까지 관가의 종으로 만든다. 셋째, 군사력을 높이가 위해 = 벼슬과 작위는 모두 군사적인 공로에 따라 정하며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못한 자는 부유하더라도 사치한 생활을 할 수 없고 귀족이라도 평민 대우를 받는다.

 

바로 이 군공(軍功) 작위 제도에 따라 적군의 머리를 하나 바치면 한 급() 승진하게 되어 머리 수()자와 계급 급()자가 합쳐서 잘려진 머리를 수급(首級)’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법령이 공포되자 처음에는 반발하는 백성들이 많았다. 특히 일생에 보장되는 기득권을 가진 귀족들이 크게 반발했고, 태자마저 반대파가 되었다. 벼슬아치들은 파직시키면 그만이지만 태자는 건드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효공왕은 위앙의 주장대로 강력히 개혁을 밀고 나갔다. 심지어 반대하는 태자의 스승에게 벌을 주어 공손건(公孫虔)은 코를 자르고 공손가(公孫賈)는 얼굴에 글자를 새겼다. 새로운 법령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몇 해가 지나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어났다. 백성들은 부역을 면제받는 혜택을 누리려고 열심히 농사를 짓고 천을 짰고, 장병들은 승진할 희망이 보이자 너도나도 전쟁에 나가 용감히 싸워 적의 수급을 가져왔다. 수급을 가져온 장병들에게는 약속대로 승급을 지켰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진나라 사람들을 두고 개인적으로 싸우는 데에는 비겁하나 공적으로 싸우는 데에는 용감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위앙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최강국이던 위()나라와 싸워 크게 이기자 위나라 혜왕(惠王)은 위앙의 개혁을 먼저 쓰지 않는 것을 몹시 뉘우쳤다. 위앙은 새로운 개혁을 계속하여 수도를 동쪽의 함양으로 옮겨 중원으로의 발전을 꾀하고 행정구역을 31개 현으로 나누어 조정에서 직접 관리를 임명해 중앙의 명령이 신속히 하부조직에 전달되게 했다. 또 밭은 개간한 백성의 소유로 인정해 주고,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진()나라는 개혁을 통해 부유하고 강대해졌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개혁이 없으면 국가 발전도 없다. 어느 때보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의지가 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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