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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제7의 왕국 제1부 (5회)




권우상 연재소설 = 7의 왕국 제1(5)

 

7의 왕국

 

 

나는 불쌍한 그 모녀를 그냥 둘 수가 없소! 세상에서 가장 큰 근본은 효행일진대 어린 나이에 앞 못 보는 어머니를 위해 어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소. 나는 쌀 백 섬을 내어 그 모녀를 도울 것이오

효종랑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곳에 모인 여러 낭도들은 저마다 옷감을 내겠다, 돈을 내겠다, 곡식을 내겠다 하며 은지(恩知)를 돕기로 결심했다. 효종랑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은지(恩知)의 효행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다. 그 말을 들은 효종랑(孝宗郞)의 아버지는 불쌍한 은지(恩知) 모녀를 위해 곡식과 옷감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며칠후 효종랑은 진성여왕의 부름을 받고 함께 한 자리에서 은지(恩知)의 효행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진성여왕

어린 소녀가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는 효행이 참으로 기특하오

하고는 집 한 채와 쌀 오백 섬을 하사하고 군사 두 명을 상주시켜 은지(恩知)의 집 주변을 도둑으로부터 지키게 하자 마을 사람들은 은지(恩知)가 사는 마을을 효양방(孝孃房)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효양방이 불에 타고 은지의 집을 지키던 군사 두 명이 살해되는가 하면 여왕이 은지(恩知)에게 하사한 쌀 오백섬이 강탈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사건이후 여왕을 비방하는 글이 더욱 극열하게 나붙었다. 신라 서라벌(徐羅伐) 관청거리에 붙어 있는 조정과 진성여왕을 비방하는 방()은 떼면 다시 붙이고 떼면 다시 붙이고 하여 조정에서도 골치가 아팠다. () 내용도 점점 노골적으로 여왕(女王)과 조정을 비방하였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 진성여왕은 젊은 남자들과 매일같이 황음(荒淫)을 즐기면서 색욕(色慾)에 빠져 있으니 조정의 기강은 무너져 관직이 돈에 팔리고 뇌물이 왔다갔다 하네. 이찬 벼슬은 얼마이고 상대등 벼슬은 얼마인고.... 어진 신하를 쫓아내고 아첨(阿諂)하는 간신(奸臣)들만 조정에 앉아 있으니 나라 꼴을 보면 기가 차네 -

 

 

이 방()을 보자 진성여왕은 어느 때 보다 크게 분노하여 범인을 알아내어 잡아 들이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효양방을 불지르고 쌀 오백섬을 강탈할 범인도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방()을 붙힌 범인은 물론 효양방을 불지르고 쌀 오백섬을 강탈해 간 범인도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처럼 혼란한 가운데 신라 조정은 상벌(賞罰)이 함부로 행해지고 관직(官職)이 돈에 팔리고 뇌물이 난무하는 등 그야말로 조정은 점점 깊히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지조(志操) 있는 신하들은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草野)에 묻혀 땅을 일구어 살거나 지방 호족(豪族)의 밑에 들어가 신라 조정에 맞서 싸울 새로운 세력에 규합되기도 하였다. 그것이 자기들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라(新羅) 조정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거타지(居他之)는 노인에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노인은 반가운 기색으로 얼른 대답했다.

내일 아침이면 또 사미승이 하늘에서 연못으로 내려 올터이니 그 때 화살로 그 사미승을 쏘아 죽여 주시오 !”

노인의 말에 거타지(居他之)

알았소이다. 내 반드시 어르신 말씀대로 할 것이오. 그런데 말이오?”

말해 보시오

신라는 망할터이니 북쪽에 있는 새로운 나라로 가라고 했는데 그 나라가 어떤 나라요?”

그건 나도 모르오. 하지만 신라는 분명히 멸망할 터이니 이 기회에 신라를 벗어나시오!”

거타지(居他之)는 신라(新羅) 조정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노인의 말이 맞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노인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승낙하고는 거타지는 그날 밤을 연못가 풀이 우거진 곳에서 숨어 보냈다. 깜빡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싸늘한 새벽 한기가 온 몸을 감싸 거타지(居他之)는 얼른 잠에서 깨어났다.

 

 

먼 동쪽으로 희미하게 여명(黎明)이 밝아 오고 있었다. 노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거타지(居他之)는 화살을 시위에 잰 채 꼼짝도 하지 않고 풀 숲에 숨어 연못 주위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잠시후 노인의 말대로 하늘에서 흘연히 나타난 사미승이 연못 주위를 돌며 다라니경(多羅尼經)을 외우자 연못 위로 용() 세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미승은 입맛이 당기는 듯 그 중 한 마리를 연못 밖으로 끌어 낼려고 했다. 거타지(居他之)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활을 겨누었다. 가슴은 터질 듯이 두근거렸지만 정신은 조금씩 또렷해져 활시위에 팽팽하게 힘이 들어갔다. 숨을 잠시 멈추고 거타지(居他之)는 활시위를 놓았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바람보다 빠르게 날아가 사미승의 가슴에 정통으로 꽂혔다. 사미승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퍽 꼬꾸라졌다.

거타지(居他之)가 달려 갔을 때 사미승은 사지(四肢)를 부들부들 떨면서 붉은 피를 입으로 낭자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더욱 놀랍고 기괴한 것은 죽은 사미승이 다름 아닌 늙은 커다란 여우였다. 거타지(居他之)가 놀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데 어제의 노인이 다시 나타나더니 거타지(居他之) 앞에 무릎을 꿇었다. 노인은 아내와 딸인 듯한 두 사람과 함께 있었다.

 

 

 

고맙소! 이 은혜를 꼭 보답하겠소. 내가 말한대로 북쪽에 있는 나라로 가서 왕씨(王氏) 장군의 수하에 들어가면 앞 날에 좋은 일이 있을 것이오!”

거타지(居他之)는 얼른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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