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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제7의 왕국 제1부 두 번째 (2)




권우상 연재소설 = 7의 왕국 제1(2)

 

     제7의 왕국

 

그렇게 한참을 수평선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던 거타지(居他之)는 섬 안을 돌아 다니다가 제법 큰 연못을 발견하고는 연못가 나무 밑에 앉아 잠시 몸을 쉬려고 할 때였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서슬한 기운이 거타지(居他之)의 등허리를 빠르게 훑고 내려갔다. 그 순간 위협을 느낀 거타지(居他之)는 화살을 잰 시위를 힘껏 잡아 당기며 재빠르게 뒤로 몸을 돌렸다. 거타지(居他之)가 겨누고 있는 활의 끝에는 흰옷을 입고 머리와 수염이 온통 하얀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눈빛은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고 무엇인가 애원하는 눈빛 같기도 했다. 노인은 정중한 목소리로 거타지(居他之)에게 말했다.



두려워 마시오 ! 나는 이 연못에 사는 용왕신이오

거타지(居他之)는 화살을 그대로 잡은 채 말했다.

노인장이 양패공의 꿈에 나타나서 나를 이곳에 남겨두게 한 용왕신이란 말이오 ? 도대체 나를 이곳에 남겨두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를 잡아 먹기라도 하겠다는 말이오?”



약간 화가 난 듯 거침없이 내벧는 거타지(居他之)의 말에 노인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오. 그것이 아니라 내가 궁사(弓士)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그랬소

노인의 간절한 말에 거타지(居他之)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겨누었던 화살을 내려 놓았다.

그래 내게 부탁할 것이 무엇이란 말이오? 어디 들어 보기나 합시다. 어서 말해 보시오

노인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몇 백년 동안 이 연못에서 일가를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얼마전부터 동이 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하늘에서 사미승이 내려와 다라니경(多羅尼經)을 외우며 연못을 도는데 신기하게도 세 바퀴를 돌고 나면 우리 일가들의 몸이 물 속에서 연못 위로 저절로 떠오르게 되지요. 그러면 사미승은 우리들 중에서 제일 살찐 한 마리를 잡아 먹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 간답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우리 일가들은 거의 다 잡아 먹히고 우리 늙은 부부와 딸 아이 하나만 남게 되었소. 그래서 여러가지 방도를 궁리하다가 신라(新羅)에서 가장 활을 잘 쏘는 명궁으로 이름난 그대가 이곳 앞 바다를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는 폭풍우로 그대가 탄 배를 잡아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오. 부디 남은 우리 일가(一家)를 구해 주시오. 그리하면 나도 그대에게 은혜를 보답할 것이오!”



나한테 무슨 은혜를 보답하겠소?”

거타지(居他之)의 말에 노인은

신라는 멀지 않아 망할 것이오. 그러니 신라를 벗어나 북쪽에 있는 새로운 나라로 가시오. 지금 이때 가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터이니 서둘러 속히 가시오. 그리고 그 나라에 가서는 왕()씨 성()을 가진 장군의 수하에 들어가면 그대의 앞 길이 환하게 열릴 것이오. 내 부탁을 들어 주면 그대가 북쪽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 주겠소

 


이 무렵 진성(眞聖)여왕이 등극하자 신라(新羅) 사회는 국가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지고 국가 체제가 와해(瓦解)되어 가고 있었다. 진성여왕은 즉위 초부터 각간 벼슬의 위홍과 간통(姦通)하고 있었다. 왕위에 오르자 위홍을 요직에 앉히고 국정을 돌보게 하였고, 관청 거리 곳곳에는 진성여왕과 위홍을 비롯하여 조정 대신들을 비방하는 방()이 나붙었다. 위홍은 노발대발하여 신하들에게 말했다,

지금 대왕과 조정대신들을 비방하는 방이 관청거리 곳곳에 나붙어 있소. 당장 군사를 동원하여 범인을 잡아 들이도록 하시오!”



그러자 대신(大臣)들은 한결같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어 잡아 들이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그런데 진성여왕의 측근인 박양근(朴良根)이가 방()을 붙인 범인으로 대야주(경남 합천)의 학자인 왕거인(王巨仁)을 지목하였다. 왕거인(王巨仁)은 대학자로 부패한 신라 조정을 한탄하며 대야주(합천)에 은거하고 있었는데 많은 백성들이 왕거인을 존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성여왕은 왕거인이 정말 범인(犯人)인지 아닌지 조사해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위홍의 말에 따라 왕거인(王巨仁)을 잡아 들이라고 명령했다. 박양근은 왕거인이 범인이라고 위홍에게 보고 했던 것이다. 위홍은 왕거인에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형틀에 묶어 놓고 가흑한 고문을 가하도록 형리(刑吏)들에게 명령했다. 왕거인(王巨仁)은 육신이 찢기고 피를 낭자하게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범인이 아니니 나를 죽인다 해도 범인이 아니라는 말 밖에 더 할 말이 없다



그러자 위홍은 더욱 노발대발하여

이놈이 그래도 실토를 하지 않는구나! 사지가 찢기도록 더욱 주리를 틀어라!”

하고 위홍이 명령하자 형리들은 왕거인(王巨仁)에게 더욱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왕거인(王巨仁)이 실신(失神)을 하자 그를 감옥에 넣었다.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한 왕거인(王巨仁)은 손가락으로 잇빨을 깨물자 붉은 피가 줄줄 흘러 내렸다. 왕거인은 흐르는 피로 벽에다 다음과 같이 시()를 썼다.

-


우공이 통곡(痛哭)하니 삼년이나 가물었고

추연이 슬퍼하니 오월(五月)에도 서리가 내렸네

지금 나의 깊은 시름은 옛 일과 같건만

하늘은 말도 없이 창창(蒼蒼)하기만 하구나 -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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