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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 천지인명(天地人命) 제 6부 스물 아홉번째 (29)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6부 스물 아홉 번째회 (29)

 

. . .

 

요즘 김경신(金敬信)의 심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선덕왕(善德王)이 즉위하면서 이벌찬(伊伐湌)이란 벼슬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라의 관등은 17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왕 밑에 병부(兵部)와 상대등(上大等)이 있고, 이벌찬(伊伐湌), 이찬(伊湌) 이하 대하찬(大河湌)까지 5등급은 진골(眞骨)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6등급인 아찬(阿湌) 이하 9위인 급벌찬(級伐湌)까지는 6두품(頭品)만이 될 수 있고, 10위인 대내마(大奈麻)에서 11위인 내마(奈麻)까지는 5두품(頭品)만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12위인 대사(大舍)에서 최하 17위인 조위(造位)까지는 4두품(頭品)만이 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진골만이 고관(高官)에 임명될 수 있고, 중앙은 영(), 지방은 군주(軍主)나 사신(仕臣)에 임명될 수 있었다.

골품제도가 엄격했던 터이라 아무리 유능한 인물이라도 성골(聖骨)에서는 이벌찬이나 이찬 등의 높은 벼슬은 할 수 없었다. 왕 밑에 상대등(上大等)은 진골계 귀족의 대표라야 될 수 있고, 국정을 통괄하였다.

지금 이 상대등 자리에 김주원(金周元)이 앉아 있었다. 왕 다음으로 막강한 자리였다. 상대등(上大等) 밑에 높은 벼슬은 이벌찬(伊伐湌)이었는데 이 자리에 있다가 물러난 김경신(金敬信)은 왕(선덕왕)을 원망하면서 집에서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다.

김경신은 생각만 하면 그 놈의 김주원(金周元)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이벌찬 (伊伐湌)이란 높은 벼슬을 빼앗겼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모든 권력은 왕과 상대등인 김주원이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는터이라 장차 왕위 계승에 불안을 느낀 김주원이가 왕을 선동하여 김경신의 벼슬(이벌찬)을 박탈 당하게 한 것이었다. 관직을 박탈하여 기세를 꺾어 놓자는 속셈이었다. 이런 속셈을 김경신은 잘 알고 있었다.

하기야 왕위 계승 서열로 보아도 김주원이 김경신보다 위라 왕의 뜻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 김주원 니놈이 임금을 선동하여 나를 내쫒다니... 고얀놈.....)

김경신은 늘 마음속으로 김주원을 가슴에 묻어놓고 칼을 갈고 있었다.

5월의 따뜻한 햇살이 포근히 내려앉고 있는 정원을 한가롭게 거닐던 김경신은 자기네 암탉 뒤를 쫒던 수닭이 잽싸게 암탉의 목덜미를 물고 위에 올라가 교미를 하는 모습을 보자 화가 났다. 그 숫탉이 바로 김주원의 닭이었기 때문이었다. 닭들이야 이웃끼리 서로 놀다가 입도 맞추고 성기(性器)도 부비기 마련이지만 오늘따라 김경신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특히 김주원의 닭이고 보니 더욱 그러했다. 하찮은 미물을 가지고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속으로 생각을 하면서도 며칠전 하인 순례가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그렇지가 않았다.

순례(順禮)는 김경신의 집 여자 하인(下人)이었다. 김경신의 아버지가 하인이었던 순례 어머니를 간통하여 생겨난 아이가 바로 순례였다. 그런데 이 순례를 며칠전 김주원의 부인이 빰을 쳤던 것이다. 우물에서 빨래를 하던 양쪽 집 여자 하인끼리 말다툼을 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김주원의 부인이 순례의 빰을 친 것이었다. 사소한 여자 하인끼리의 말다툼에 양반집 부인, 그것도 상대등(上大等)이란 최고 높은 벼슬의 양반(진골)집 부인이 천한 하인을 폭행했다는 것은 김경신(金敬信)으로서는 매우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하인이라고는 하나 자기 아버지의 피가 썩여 있기 때문이었다. 딱이 혈육으로 말하면 김경신과 오누이인 셈이었다. 아무리 간통으로 생겨난 서출(庶出)이라고는 하나 누이동생에게 폭행을 했으니 김경신으로서는 기분이 좋을리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김주원에게 벼슬(이벌찬)을 빼앗기고 심기가 불편하던 차에 김주원의 탉까지 와서 자기네 암탉에게 욕정을 채우고, 게다가 누이동생이 김주원의 부인에게 빰까지 맞았으니 김경신으로서는 부아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진골(眞骨)의 귀족신분으로 같이 대들고 싸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경신은 얼른 곳간으로 들어가서 화살을 들고 나와 수탉을 보고 겨누었다. 교미를 끝내고 꼬꼬 거리며 한쪽 날개를 비스듬히 세우고는 삐딱한 자세로 암탉 주의를 맴돌던 수닭을 향해 활시위를 힘차게 당겼다. 화살은 세찬 바람을 가르며 닭의 날개 부분을 명중시켰다.

까르르 까욱 까욱 하는 소리와 함께 수탉은 날개죽지에 화살을 맞고 퍽 쓰러졌다. 닭의 비명소리에 하인 천수(天手)가 얼른 뛰쳐나와 김경신 옆에 허리를 굽히고 다가섰다. 김경신은 아직 살아서 퍼득거리는 수탉을 보고

저놈의 탉을 얼른 곳간 뒤로 가져가서 불태워 버리거라

. 대감 나으리

김경신의 말에 하인 천수(天手)는 대답을 하고 화살에 맞아 퍼덕거리는 수탉을 곳간 뒤로 들고 가서 볏집에 불을 붙히고는 닭을 그 속에 집어 던졌다. 천수는 닭을 소각한 후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곳간 뒤를 빠져나와 김경신에게 다가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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