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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 천지인명(天地人命) 제4부 스물 두 번째회 (22)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4부 스물 두 번째회 (22)

 

. . .

 

 

원님의 얼굴빛이 험악하게 변했다.

박첨지는 듣거라 ! 너는 양반된 체면에 딸 하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여 혼인 전에 외간 남자를 불러 들여 추잡한 일을 하는 것을 미리 막지 못했으니 어버이 된 자로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려니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침이 없이 오히려 관가에 송사를 걸어 추잡한 일을 면해 보겠다는 속셈인즉 너의 죄를 가볍게 다룰 수는 없으니 큰 벌을 받아 마땅하나 그대의 사정이 딱하므로 이대로 돌려 보내니 좋은 날을 택하여 둘이 혼례를 치루도록 하라 ! ”

. 황송하옵니다

미처 얼굴조차 들지 못하고 떨고만 있던 박첨지는 그대로 딸과 같이 관아를 물러 나왔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로다

박첨지는 분이 뼈속까지 사무쳤으나 모두 천명이요 사주팔자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관가에 송사를 걸어 사또의 판결을 어길 수도 없어 눈물을 머금고 좋은 날을 택하여 딸을 팽만수와 혼인을 치루게 했다. 이렇게 해서 큰 부잣집이요 양반집인 박첨지의 사위가 된 팽만수는 처가(妻家) 덕만 믿고 편안히 호강하지는 않았다. 비록 무식하기는 했지만 천성이 강직하고 부지런한 팽만수는 장인에게 장사 밑천을 조금 얻어 가지고 행상(行商)을 떠났다. 장사를 해서 많은 돈을 벌어 부자로 살고 싶은 생각때문이었다.

팽만수(彭萬洙)는 돈벌이가 잘 된다는 바께쓰 장사를 시작했다. 포도아(葡萄牙) 사람에게서 좀처럼 팔리지 않는 바께쓰를 싼값으로 사서 한 짐 지게에 짊어지고 멀고 가까운 큰 동네만을 찾아 다녔다.

우리 조선에 다시 없는 귀한 물건 양바가지가 왔습니다. 양바가지 사려... 가볍고 깨지지 않고 목에 걸던 팔에 걸던 들고 다니기에 편한 양바가지가 왔습니다....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고, 비가 올 때는 삿갓처럼 쓰고 다녀도 좋고, 술 마실 때 북 대신 장단 맞추기 좋고 물 긷고 김치나 깍두기 담기 좋고 급할 때는 소피(오줌) 보시기에 좋은 포도아 양바가지 사려 ! ”

이렇게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그리고는 막대기로 북처럼 쿵작쿵작 장단을 맞추어 신명나게 두드리며

어얼 씨구씨구 돌아간다. 작년에 왔던 거렁뱅이가 죽지도 아니하고 또 왔소.. ”

하면서 목청을 돋구어 한 가락 뽑으면 대갓집 부인이나 밥술을 먹는 집 부인들이 무슨 구경꺼리가 생겼나 싶어 하나 둘씩 모여 들었고, 그러다가 신기한 바께쓰를 사가기도 했다. 그 값이 산 값보다 몇 곱절이나 되었으니 하루 대 여섯 개만 팔아도 큰 이익을 보았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때 어느 큰 동네에 들어 섰다. 마침 동네 한복판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서 있고 이 집 안팎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글와글 들끓고 있었다. 듣고 보니 무남독녀 외동딸의 데릴사위를 맞는 날이라고 했다. 온 동네가 시끌법적 이 집을 위해 있는 듯 먹고 마시는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사람 팔자 죽으라는 법은 없나보군... ”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팽만수는 지게를 짊어진 채로 대문 안에 들어 섰다. 이런 경사스러운 때가 아니면 대문 앞에도 얼씬거리지 못하는 일이었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하인 하나가 팽만수가 내려 놓은 지겟짐을 뒤에서 붙들어 주기까지 했다. 더구나 방으로 모셔다가 푸짐하게 술과 고기와 떡으로 극진히 대접했다.

배부르게 먹고 마신 팽만수는 주인 어른을 찾았다. 돈은 줄 수 없지만 팔다가 남은 바께쓰 하나를 주고 후한 대접에 인사라도 할 생각이었다.

어르신 ! 소인은 황해도 태생으로 행상으로 벌어 먹고 살아 온 사람인데 뜻밖에 이런 후한 대접을 받고 보니 그저 눈물이 나도록 황공하옵니다.. 이것은 변변치 않사오나 소인의 정성으로 아시고 받아 주옵소서

바께쓰 하나를 주인 어른에게 주며 정중히 말했다.

. 별로 대접도 못했는데 이렇게 귀한 물건을 주시니 오히려 송구스럽기만 하오.... ”

칠 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주인 어른은 바께쓰를 받고 자못 신기하다는 듯이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만족해 하는 눈치였다. 바로 이때 건넌방 문이 사르르 열리더니 17 - 18세 가량으로 보이는 주인댁 딸이 주인 어른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 왔다. 처음보는 신기한 물건이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님 ! 그것이 무엇이어요 ? ”

예쁘게 생긴 얼굴에 엷은 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이것은 저 손님이 주신 것인데 서양 사람들이 가져온 바께쓰란다

바께쓰요 ? ”

순간 예쁜 눈이 둥그래지고 얼굴 빛이 변하는 것을 팽만수는 놓치지 않았다.

귀한 물건이니 네가 가지고 있다가 소용될 때 쓰거라

바께쓰를 받아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주인댁 딸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팽만수의 뇌리에는 웬일인지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튿날이었다. 이집 사위가 될 신랑과 후행이 말 방울 소리를 짤랑짤랑 울리며 들이 닥쳤다. 넓은 마당은 더 한층 소란스러웠고 온 종일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은 마치 저자거리와도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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