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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 천.지.인.명(天.地.人.命) 제1부 세 번째회 (3)

 

 

 

권우상(權禹相) 연작소설 제1부 세 번째회 (3)

 

   천. . .

 

 

이무렵 평안도 초산(楚山) 고을에 정대운(鄭大雲)이라는 토반이 살고 있었다. 정대운은 문하시중(門下侍中) 정도전(鄭道傳)의 먼 친척되는 사람으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가 많고 더욱 글줄이나 읽은 터여서 이웃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정대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는 벼슬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으나 정도전(鄭道傳)은 그가 관직에 나오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기 때문에 벼슬을 하지 못하고 여러 명의 머슴(하인)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

정대감에게는 강만수(姜萬洙)라는 젊은 머슴(하인)이 있었는데 근본이 없는 상사람의 집에서 태어나 무식하기는 하였으나 무척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었다.

 

 

정대감은 먹고 살 것이 충분하고 몸이 편하고 보니 자연 생각나는 것이 부질없는 것들 뿐이었다. 초산(楚山) 고을에 얼굴이 반반한 여자라면 논마지기나 얼마간 떼어 주고는 사오다시피 하여 데려다 첩실(妾室)을 만든 여자가 자그만치 열 두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에 차지않아 자기 집 머슴인 강만수(姜萬洙)의 마누라 옥매(玉梅)를 빼앗아 볼 욕심을 품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 해괴망측한 꼴을 당하게 되었다.

 

 

옥매(玉梅)는 얼굴이 유달리 아름다웠던 것은 물론이려니와 몸 맵시 또한 여자다워서 정대감은 아침 저녁으로 눈에 뜨일 때마다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을 길이 없어 주야로 생각하는 것이 옥매를 품에 보듬어 안을 궁리뿐이었다.

함박눈이 내리거나 이따금 바람마저 모질게 휘몰아치는 어느 겨울 동지 섣달 새벽, 정대감은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머슴인 강만수를 불러 들였다.

대감마님, 소인을 불렀습니까?”

 

 

강만수가 나타나자 정대감은

다름이 아니라, 내 나이 이미 육순(六旬)에 몸이 점점 허약해 지는 것 같아서 보약을 달려 먹어야 하겠으니 자네는 오늘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산딸기 서 말을 따와야 하겠네

. 그렇게 합지요

머슴 강만수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다행이 자네가 산딸기 서 말을 따오면 그 수고 값으로 돈 스무 냥을 자네에게 틀림없이 주려나와 만약 따오지 못하면 그 벌로 자네 것을 무엇이든 나에게 넘겨 줘야 하네

. 그리합지요

 

 

그래, 만약 말일세. 산딸기를 따오지 못하면 자네 마누라도 내가 원하면 내놔야 하네

속 마음이 엉큼한 정대감이 다짐을 주는 말이었다.

", 대감 분부대로 하오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머슴 강만수는 성큼 대답했다.

정대감은 매우 기뻤다. 자기의 꾀에 머슴 강만수가 넘어가는 것이 고소하고 고분고분 들어주는 것이 여간 마음에 흡족하지가 않았다.

역시 종놈은 종놈 생각뿐이지...’

그렇게 생각한 정대감은

 

 

미리 돈을 주지

생색도 내고 약속을 어김없이 서로 지키자는 뜻에서 돈 스무 냥을 선뜻 내놓았다.

머슴(하인) 강만수는 별로 근심하는 빛도 없이 돈을 받아가지고 나오다가 자기 마누라 옥매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 일러 주고는 험한 산길을 떠났다.

하루가 지나자 산으로 딸기를 따러 갔던 머슴 강만수가 이른 새벽 느닷없이 돌아왔다.

대감마님! 지금 돌아왔사옵니다

그래, 산딸기는 따왔느냐?”

 

 

정대감은 궁금해 물었다.

사실은 산딸기를 따려고 깊은 산중을 헤매던 중에 한 곳에서 많은 산딸기가 탐스럽게 익어가는 것을 보기는 하였사옵니다..”

그래서?”

그런데 난데없이 뱀이 나타나 하마터면 물려 죽을 뻔 하였사옵니다

뭣이, 이놈아, 동지 섣달에 뱀이 나타나다니 무슨 소리냐?”

정대감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오면 동지 섣달에 산딸기는 어디에 있다고 대감께서 따오라 하시옵니까?”

 

 

앗차? 그렇구만...으음....’

정대감이 무릎을 치며 신음을 했다.

하여서는 안될 말을 자기가 먼저 끄집어낸 것이 큰 잘못이었다. 또 사실이 그러하니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오랫동안 애를 써가며 짜낸 자기 꾀가 허사로 돌아간 것이 무엇보다도 분하였다. 더구나 미리 준 돈 스무 냥이 살을 베어준 듯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겨낼 아무런 트집이 없었다.

입을 도사려 문 정대감은 다른 꾀를 짜내기 위해서 오목 들어간 두 눈을 다시 휘둥거렸다.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돌아왔다.

 

 

정대감의 맏아들 상진(相眞)이가 과거(科擧)를 보러 한양(漢陽)으로 떠나게 되었다. 당나귀에 돈과 책을 듬뿍 싣고 머슴 강만수가 상진(相眞)을 모시고 한양에 다녀오게 되었는데 아들 상진이 막 떠나려 할 때에 정대감은 아들 상진을 자기 방으로 조용히 불러 이렇게 말했다.

강만수는 아무리 고쳐 생각해 보아도 내 비위에 거슬려 같이 살 수가 없으니 네가 강만수를 데리고 한양으로 올라가다가 큰 물에 빠뜨려 없애버려라. 그래야만 내가 마음을 놓고 살겠다

아버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부자지간에 엉큼한 검은 언약이 이루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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