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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우상(權禹相) 칼럼 - 선행을 베푸는 마음으로 살자

 

 

칼럼

 

 

                 선행을 베푸는 마음으로 살자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세월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인생에 있어서 처음의 4분의 1은 우리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지나가고 나머지 4분의 3은 인생의 즐거움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지나가고 만다. 처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며, 그 방법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남아 있는 인생의 4분의 3은 수면과 노동과 육체적 심리적 고통으로 채워져 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이 짧다고 보기 보다는 인생을 유쾌하게 즐길 시간이 짧다는 것이다. 인간은 두 번 태어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또 한 번은 생활하기 위해서 태어난다. 즉 처음은 인간으로 태어나고 다음은 남성이나 여성으로 태어난다. 혹자는 여성을 미완성된 남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사춘기에 이르기까지는 남녀를 구별할 수 있는 명백한 외관상의 차이는 없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타고난 자연적 본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적인 본성은 정념(情念)의 근원이며, 정념의 근원은 자연이다. 이 근원은 수 많은 작은 흐름에 의해서 크게 불어나는 강물과 같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인간의 정념(情念)은 극히 한정되어 있어서 그것은 어느 인간의 자유와 보존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인간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파멸로 이끄는 정념은 자연이 주지 않는 것으로서 모두 다 외부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언제나 존재하는 유일한 정념은 자기에 대한 애착심이다. 이것은 근본적이고 본능적이며 다른 모든 감정에 선행하므로 그 외의 다른 감정은 그것의 변형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모든 정념은 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감정은 자애(自愛)이다. 자애란 항상 선한 것이며, 자연의 질서에 따른다. 자기 보존의 의무는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것으로 가장 중요한 배려는 거기에 집중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감정의 직접적인 결과로써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보호해 주는 대상을 찾게 된다.

 

 

사람은 자신을 보호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에게는 호감을 가지는 반면 해를 끼치려는 사람에게는 반박한다. 사람들은 주어진 충동에만 따르는 무감각한 존재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열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내면적인 성향이나 의지에는, 또는 악()이 기대되는 사람들, 찬성이나 반대를 자유롭게 행사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감정과 똑 같은 감정을 우리에게도 갖게 한다. 사람이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원하고 이익을 주려는 사람을 사랑한다. 우리의 온정과 애정이 담긴 감정은 자기 사랑에서 생겨나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화 잘 내는 감정은 자존심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인간을 본질적으로 인간답게, 선량하게 하려면 욕망을 적게 하고 남들과 비교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반대로 인간을 악하게 만드는 것은 지나친 욕망과 타인보다 우위에 설려고 하는 과도한 집착 때문이다.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사는 존재이므로 언제나 선량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위험을 가져오는 욕망으로부터 인간의 심성을 보호하는 일이 더 한층 요구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도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사람은 상호 교환적인 것이어서 사랑을 받으려면 내가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사랑과 우정과 함께 불화와 반목, 증오가 생기게 된다.

 

 

인류를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는 민중이다. 우리는 모두 평등한 존재이므로 가장 많은 사람이 속한 신분의 사람이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사회적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비천한 사람에게나 고귀한 사람에게나 동일한 감정과 정념이 있으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말씨와 몸가짐 밖에 없다. 사람을 알려면 그들의 행동을 보아야 한다. 또한 그들의 말로써도 그들을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에는 진실한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특히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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