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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칠십 한 번째회 (71)

 

 

 

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칠십 한 번째회 (71)

 

봉이 김선달

 

 

가슴에서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잠시후 여인도 남편도 잠든 듯이 온화한 얼굴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체가 되어 버렸다.

사람이 죽었소이다. 젊은 두 내외가 죽었소이다 ! ”

신고가 들어와 이 일은 관가官家에 알려져 형방 나졸들이 좁은 뜰안에서 법석을 떨었다. 천하에 몹쓸 현륭원顯隆園 관인官人들의 목이 잘릴 것이라고 백성들은 굳게 믿었다. 그러나 다음날 젊은 부부의 원혼冤魂이 감도는 초가草家 문전에 방()이 붙어졌다.

- 수원성水原城 백성들에게 알리노라. 이 집 내외는 관인들을 모욕한 자기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손수 자결하였노라.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각별히 조심하되 서산낙조西山落照 전에 우물을 긷도록 필히 지킬지어다 -

수원부사水原府使 김공金恭

 

이 방을 읽고 난 어떤 점잖은 나그네는

허어. 알기는 아는 모양이군... ”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대로 서성거렸다. 묵흔墨痕이 임리淋漓한 필치筆致가 신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 보다 못한 벼슬아치들의 눈을 실컷 저주해 보려는 것이었다. 가슴 한복판에 못을 박아 놓은 듯 억울하고 안타가운 백성들의 심정은 좀처럼 풀릴 길이 없었던 그 해도 훌쩍 지났다.

현륭원顯隆園 관인官人의 행패는 해가 바뀔수록 극심해졌을 뿐 조금도 뜸하는 기색조차 엿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이 곳을 떠나야 된다. 이 수원부水原府는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되자 하나 둘 수원부水原府를 등지는 백성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였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아 있는 사람이나 서로 헤어질 때에는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설사 누가 묻더라도 현륭원顯隆園 관인官人들의 작패 때문이라고는 행여라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잘 가게

잘 있게

이렇게 헤어지만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

세상이 좋아지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언제 좋아질지 그저 막막할 뿐이네

백성들이 주고 받는 한 마디 속에 작별을 아쉬워 하는 서글픈 심정이 뼈저리게 오고 갔다. 수원부水原府를 등지는 백성들은 거의 모두가 아름다운 아내를 가진 사람이나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이었다. 떠나는 이유가 나무나도 뻔하기에 다른 곳에 가서라도 그들의 삶이 편안할 것이라는 보장을 받을 수는 없었다. 잔악하고 무서운 무리들이 그림자처럼 그들의 뒤를 항상 따라 다녔다.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계집이 있으며 집과 농토를 팔고 가산을 정리했으니 적지 않은 돈이 보따리 속에 있었다. 무뢰한들이 후미진 곳이나 으슥한 산모퉁이에서 기어코 욕을 보였다.

돈은 있는 대로 다 드릴 터이니 내 딸만 눈 감아 주시오

착한 백성들이 두 손을 모아 비벼가며 애걸했으나 돈을 뺏은 무뢰한들은 잔인하게 여인까지 겁탈 할려고 대들었다.

시끄러워 ! 예쁜 계집을 그냥 보낼 수 없단 말이야

같은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 옷은 흰 옷을 입었을 망정 속은 한 없이 검은 그들은 곱게 기른 딸자식을 끌고 산허리 으슥한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겁탈을 자행했다. 부모로서는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찌하여 임금과 조정 대신들은 이런 백성의 고통을 왜 그냥 내버려 둔단 말인가.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무능해 부패에 오염되면 나라가 썩어 백성들의 삶은 곤궁한 법이다. 성 안팎은 먹물을 끼얹은 듯 어둡고 처참하기만 했다. 이 가고 달이 가며 하루 하루 사는 것이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지만 이 해도 막 다음 해로 넘어 갈 때였다.

수원부사水原府使 김공金恭은 중화부사中和府使로 전임되었고 그 대신 평양의 작은 고을 사또인 최상부崔尙夫가 수원부사水原府使로 영전되어 부임했다. 최상부는 봉이 김선달과 절친한 사이로 지혜가 있

고 강직하기가 대나무와 같았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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