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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ㆍ예술

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육십 아홉 번째회 (69)

 

 

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육십 아홉 번째회 (69)

 

        봉이 김선달

 

 

그리고 이렇게 번 돈으로 큰 집과 넓은 농토를 마련하여 여러 명의 하인下人을 두고 여덟 팔자() 긴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에헴... 너희들도 가난하게 사는 것이 억울하면 나처럼 머리를 굴러 돈을 벌어 봐라 !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 그말이다.. 에헴 에헴...”

하면서 긴 장죽을 물고 나무와 꽃들이 아름다운 넓은 정원을 거닐면서 여유 있고 즐거운 생활을 하였다.

낮은 지대의 강물을 제방 넘어 논으로 퍼 넘기는데 사용되었던 농기구의 일종인 <물자애>는 그 후에 각 지방으로 확산되어 지방에 따라서는 <무자세> <무자애> <무지위> 등으로 불리어졌다. 그리고 염전鹽田에서 사용하는 수차水車도 바로 이 <물자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0)

 

용주사龍珠寺가 있는 수원水原 현륭원顯隆園에는 많은 불도佛徒들과 벼슬아치들이 덕실거렸다. 현륭원은 왕이 부왕父王의 혼백魂帛을 기리기 위하는 뜻에서 세우게 한 도원道院이었다.

효성이 이토록 지극하였기에 현륭원縣隆園의 규묘 또한 화려하고 웅장하였다. 더구나 용주사龍珠寺는 현륭원의 경내에 특별히 마련하게 한 사찰寺刹이었다. 부왕父王의 명복을 비는 향탄진배소香炭進排所도 겸하여 이룩한 사찰이라 그 위세는 필설로 다하기 어려웠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왕이 친히 이곳으로 거동하고 조정 문무백관들이 줄을 지어 참배했다. 하늘을 진동하는 듯한 승려들의 독경소리는 끓어짐이 없고 화려한 연등蓮燈 불빛은 넓은 경내境內를 낮처럼 밝혀 주었다.

이렇게 되고 보면 가장 큰 덕을 보는 측은 부왕父王의 영혼이 아니라 현륭원顯隆園에 머물고 있는 지체 높은 관인官人들이었다.

세상에 무서운 일이 없고 웬만한 벼슬아치들은 눈 아래로 보였으며 수중에 돈이 많으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 친히 거동하는 때만 아니면 많은 관인官人들은 밤낮없이 민가民家로 쏟아져 나왔다. 그 행패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술마시고 사람치기란 예사였고 계집질까지도 좋아하는 빛이 역력했다. 진탕 마신 후 술집 계집에서부터 여염집 규수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기만 하면 기어이 탐욕스런 행동을 보였다.

관가에서는 현륭원 관인들의 행패가 심한 줄 알면서도 그대로 내버려 두는 도리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관인들의 뒤에는 왕이 있고 서슬이 푸른 대감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크 ! 현륭원 관인들이 오네 ! ”

술집에서나 거리에서나 관인을 만나기만 하면 모두들 몸을 피했다. 얼굴이 반반한 아내를 가진 사람이나 예쁜 딸을 가진 부모님들은 하루도 편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몹쓸 세상인걸...... 원혼을 모신 현륭원의 관인들이 이토록 난동을 부리고 날이 갈수록 행패가 심하니 어찌 살꼬....못된 무리들이야 그렇다치고도 행패를 막을 생 하지 않으니 아마도 말세가 되었나 보구만..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가뭄이 해마다 계속되고 있으니 흉년에 살기도 어렵고 참으로 걱정이 태산같구만...”

수원부사께서 관인들의 행패라도 좀 막아줬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

수원부사께서 너무 점잖으신 탓이지

서로 귓속말로 이렇게 주고 받다가도 관인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부리나케 흩어져 버리는 백성들이었다. 현륭원顯隆園 관인官人들은 더욱 기고만장氣高萬丈해졌다. 수원성水原城 안팎 거리를 좁다는 듯이 관인官人들은 활개를 치고 다녔다.

어느날 황혼이 깃들 무렵, 어느 술집에서 거나하게 취하도록 마신 맨머리 바람의 관인官人 셋이 거리로 나왔다. 이제 남은 일은 예쁜 계집을 찾아 회롱하는 일뿐이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민가民家로 찾아 들었다. 동네 어귀 우물터에는 동이를 머리에 인 여인들이 수 없이 모여 있었다. 모두 여염집의 규수들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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