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육십 번째회 (60)
봉이 김선달
봉이 김선달은 쓴 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춘월春月은 마침내 흥분에 못이겨 봉이 김선달의 가슴을 꽉 물었다.
“ 아얏... ! ”
갑자기 가슴을 물린 봉이 김선달은 아픔을 참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바둥거린 것이 공교롭게도 장롱을 차고 말았다. 그러자 장롱 위에서 무엇인가 방바닥으로 떨어지며 쨍그랑 하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 으음... ? ”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이봐 춘월이! 어서 불을 켜보오 ”
봉이 김선달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춘월春月이가 불을 켜자 흐트러진 이부자리 언저리에는 장롱 위에 올려 놓았던 평양 감사의 가보家寶인 벼루가 떨어져 있는데 이미 두 동강이가 나 있었다.
“ 아이구 이거 망했구나 ! 망했어... 이걸 어쩌누.. 이걸 어쩌담... ”
깨진 벼루를 보자 봉이 김선달은 한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불상사가 생기면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는 평양감사의 말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두둑한 배짱이 생겼다.
“ 에고머니. 벼루가 깨졌네요. 이를 어쩌면 좋아요 ? ”
춘월春月 역시 그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깨진 것을 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 으음. 그거 친구가 선물로 준 것인데 또 사면되지 ”
벼루가 깨진 것을 평양 감사가 알면 목이 달아날 판인데도 봉이 김선달은 느긋한 얼굴로 벼루를 한쪽으로 밀쳐 놓고서 춘월春月을 다시 보듬어 않았다.
“ 흥 이거 춘월이를 못 당하겠는걸 ”
봉이 김선달은 벼루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자리에 누우면서 호탕하게 말했다. 꿀처럼 달콤했던 춘월春月과의 하룻밤이 지났다.
이튿날 일찍 봉이 김선달은 깨진 벼루를 보자기에 싸들고 하루만에 정이 든양 울고 불고 야단을 떠는 춘월春月과 작별한 채 곧 바로 한양漢陽을 향해 떠났다. 남천을 떠나 이틀만에 한양에 도착한 봉이 김선달은 즉시 황정승댁을 찾아갔다. 황정승이 살고 있는 집은 대궐 다음 가는 으리으리한 저택으로서 안채로 들어 가려면 솟을 대문을 비롯하여 무려 열 두 대문을 거쳐야만 했으며 각 대문마다 문지기가 있어서 들어 오는 사람들을 검문하는데 문지기의 허락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봉이 김선달은 문간에다 타고 온 청노새를 묶어 놓고 무조건 안으로 들어 갔다.
“ 누구냐? ”
첫 대문을 들어서자 문지기가 가로 막았다.
“ 누군 누구야. 사람이지 ”
일부러 평양 사투리를 써가며 기세 좋게 돌진하듯 다음 문으로 들어섰다. 첫째 문지기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서 넋을 놓고 있는데 다음 문지기가 가로 막았다.
“ 누구냐? ”
“ 보면 몰라? ”
난데없이 나타난 낯선 사나이의 호통에 문지기가 넋을 놓고 있는 동안 봉이 김선달은 두 번째 문도 통과했다. 이렇게 해서 열 개의 대문을 무사히 통과했는데 나머지 두 대문은 경비가 삼엄해서 쉽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 어느 놈이냐? ”
열 한번 째 문지기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 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