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오십 여덟 번째회 (58)
봉이 김선달
평양에서 한양까지는 무려 오백 리 길이였으나 평양 감사의 특사라는 신분 덕택에 역驛에서 말馬을 얻어 타고 갈 수 있어서 평양에서 한양까지 가고 오는데 보름이면 될 듯 싶었다.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이 평양을 떠난지 나흘이 지났다. 딸랑딸랑 청노새의 말 방울 소리를 울려가며 봉이 김선달이 황해도 남천南川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저녁이었다.
( 오늘 저녁은 여기서 쉬었다 가자! )
봉이 김선달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그 중에 제일 깨끗하고 규모가 커 보이는 주막 집으로 찾아 들었다.
“ 여보시오. 하룻밤 쉬어갈 수 있소? ”
봉이 김선달은 문간에서 주인을 찾았다.
“ 네. 어서 오세요. 쉬어 갈 수 있구말구요 ”
봉이 김선달을 맞은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눈이 부시도록 예쁜 젊은 여인이었다.
“ 으음... ? ”
봉이 김선달은 그만 넋을 잃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 아니. 하룻밤 쉬어 갈 수 있느냐고 물으시고서 왜 그저 저를 바라보고만 계셔요? 제 얼굴에 숯검정이라도 묻었나요 ? ”
여인은 옥같이 흰 잇빨을 살풋살풋 드러내 보이며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정답게 속삭이는 것이 금방이라도 여인을 보듬어 안고 싶을 것만 같은 황홀경에 봉이 김선달은 넋을 잃고 있었다.
“ 아이 어쩌면 저렇게 절 쳐다보고만 계실까. 어서 들어 오셔요 ”
“ 으흠.. ”
봉이 김선달은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 흠. 내 이런 촌에서 뜻밖에도 당나라 황제의 품속에서 노닐던 양귀비 같은 그대를 보니 잠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구려! ”
잠시후에 봉이 김선달은 타고난 성품대로 거침없이 농담을 걸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 어마나 별 말씀을 다 하시네 호호홋... ”
여인은 자기를 천하 일색 양귀비에게 견주어 주는 것이 은근히 좋은 모양으로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었다.
“ 자 어서 들어 오셔요 ”
“ 음. 오늘 밤은 예쁜 여자를 곁에 두었으니 잠이 오지 않겠는걸... ”
봉이 김선달은 여인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 들어 가면서 능청을 떨기 시작했다.
“ 아이구. 이제보니 선비님께서는 퍽 짓궂으시군요 ”
여인은 김선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 짖궂은 게 아니라 나비가 꽃을 곁에 두었으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
“ 아이그머니나... ”
여인은 아냥을 떨면서 간지러운 비명을 질렀다.
“ 아니 이 집에는 그대 뿐이오? ”
방으로 들어가 앉으면서 봉이 김선달은 지금까지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물었다.
“ 오늘만은 저 혼자 뿐이예요 ”
“ 오늘만? ”
“ 예 ”
“ 어째서? ”
“ 아이 그건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릴테니 어서 편히 쉬셔요 ”
“ 음. 그럼 우선 술이나 한잔 가져다 주오 ”
봉이 김선달은 술을 청했다. 그리고 몇 잔의 술을 마시는 가운데 밤이 소리도 없이 깊어 갔다.
“ 그래. 그대 이름이 뭣이오? ”
“ 춘월이라 하옵니다 ”
“ 춘월이라 으음..”
술이 얼큰하게 취한 봉이 김선달은 여인의 손을 넌지시 잡았다.
“ 아이 이 손 놓으셔요 ”
춘월春月은 술기운 때문인지 수줍음 때문인지 빨간 복사꽃 빛으로 물든 얼굴을 숙이며 가쁜 숨을 쌕쌕거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