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2부 사십 아홉 번째회 (49)
봉이 김선달
“ 아니 아침부터 무슨 재수 없는 말씀을 하시우? 꾸어 달라고 해도 줄까 말깐데 그냥 달라니? 쌀 다섯 말이 이웃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아시우? 그럴 수는 없어요 ”
오달평 마누라는 한 마디 쏘아 부치고는 오른손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코를 거머쥐고 팽 풀었다.
“ 아침부터 재수 없는 말이라구? ”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의 목소리가 약간 커졌으나 여유있는 모습이었다.
“ 그러문요. 벌써 몇 번째요? 나가는 포수는 있어도 들어오는 포수는 없다는 말처럼 선달님은 꾸어가는 쌀은 있어도 갚으러 오는 쌀은 없으니 누군 논 팔아 놓고 주막을 하는 줄 아시우 ? ”
오달평 마누라도 약간 화가 났다. 봉이 김선달은
“ 앗따 ! 단단히 화가 나셨구만.... 쌀 다섯 말에 그렇게 화를 낼 필요는 없는데 어쩐 일로 화를 내는지 모르겠구만.... ”
“ 내가 화를 안내게 생겼어요... 그러나 저러나 우리도 쌀이 없어요 ”
“ 능라도 주막 집이라면 제법 잘 나가는 주막 집인데 쌀이 없다니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구만... 뭐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으흠...”
봉이 김선달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잠시동안 오달평 마누라를 바라보다가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 쌀이 없다니 별수 없군... 오달평은 방에 있겠죠? 쌀은 없어도... ”
“ 우리 집 양반은 또 왜 찾으시우? ”
내기 바둑이라도 두고 공짜 술을 빼앗아 먹으려는 줄 알고 오달평 마누라는 땅벌처럼 사납게 쏘아 부쳤다.
“ 허허. 이거 오늘 능라도 주막 집에 와서 봉이 김선달이가 무척이나 괄세를 받는걸.. 천하가 다 아는 봉이 김선달이가 아주 초라한 꼴이 되었구만... ”
그렇게 말하고 나서 봉이 김선달은 오른 손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코를 거머쥐고 코를 팽 풀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 초라한 꼴이 되어도 할 수 없지. 만나서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 그렇게 전해 주시오! ”
봉이鳳伊 김선달金先達 역시 냉정한 목소리였다.
“ 할 이야기란 뭐예요 ? ”
“ 흥. 낸들 할 이야기가 없겠소. 이번에 꽃놀이를 가서 나에게도 할 이야기가 좀 많아졌소 ”
“ 그러니까 무슨 말씀이냔 말예요? ”
“ 여보 석쇠 엄마! 꼭 김선달의 입에서 말을 들어야 알겠소. 알고 싶다면 내 시원하게 말하리라.. 아 꽃놀이 가서 실토하지 않았소. 남편 몰래 건넛마을 박첨지와 정을 통했다구. 그 이야기지 무슨 이야기겠소 으흠... ”
“ 네 뭐라고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달평의 마누라는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 흥..... ”
봉이 김선달은 그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치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 에헴 오달평 있는가? ”
“ 아이고 선달님! ”
오달평 마누라는 안으로 들어가려던 봉이 김선달의 옷자락을 급히 잡자 봉이 김선달은 점잖게 오달평 마누라를 돌아 보았다.
“ 잠깐 제 말씀 좀 들으세요. 제가 잘못 생각 했어요. 자 이러 앉으셔서 우선 따뜻한 해장 술이나 한잔 하셔요 ”
( 진작 그렇게 나왔서야지...)
오달평 마누라의 이런 행동을 미리 머릿속에 계산하고 있었다는 듯이 봉이 김선달은 모른 체 하고서 목판 의자에 마지 못해 앉는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