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독재도 유익할 때가 있다
권우상
명리학자. 역사소설가
건국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알려진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에는 전국에서 많은 인력이 참여하였으며 건설관계자와 경제학자들이 대역사의 역군으로 피땀을 흘렸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경제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의 첫 작품이었다. 일려진 바에 따르면 1964년말 서독방문길에서 고속도로를 구상했는데, 이때 그는 중요한 체험을 했다고 한다. 서독의 고속도로(아우토반)와 라인강 운하에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다. 당시 김정염 청와대 비서실장의 회고에 의하면 박정희가 현대식 고속도로를 처음 본 것은 1954년이고 미국의 포병학교에서 교육받을 때였으며, 1964년 서독을 방문했을 때 박정희는 아우토반의 탁월한 기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가 박정희에게 “나는 아우토반에 진입하거나 인터체인지 램프를 돌아 나올 때마다 마음 속으로 그 도로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국빈용 벤츠승용차에 몸을 싣고 서독이 자랑하는 아우토반을 시속 1백60km로 달리고 있었고 차창밖의 물체들이 화살처럼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응시하다가 동승한 서독대통령 의전실장에게 아우토반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계획단계에서 건설 관리에 이르기까지, 꼬치꼬치 물었다. "朴대통령은 이날 본-쾰른 20km구간을 왕복하며 두번이나 차에서 내려 아우토반을 유심히 살펴봤다. 노면과 중앙분리대 교차시설은 물론이고 앞뒤 선형까지, 아우토반의 모든 것을 머리속에 각인시키려는 듯 했다. 줄곧 곁에 서 있었던 김정염 비서실장은 박정희가 큰 결심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박정희는 귀국하자마자 고속도로 연구에 매달려 각국 고속도로 건설공사에 관한 기록을 밤늦도록 검토하고, 전문가들에게 연구보고서를 제출받기도 했다. 국토를 개조해서라도 가난을 물리치겠다는 패기찬 40대 대통령의 대망이었다.
현대건설 정주영 사장은 한국도로공사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회고한 적이 있다. "각하께서 밤늦게 불러 들어가보면 많은 고속도로 관련 서적이 쌓여있는 서재로 데려가 손수 인터체인지 구상을 그려보이곤 하는 일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고속도로를 가장 적은 경비로 가장 짧은 기간에 완공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구상하면서 여러가지 안을 제시해 의견을 물었다고 했다." 2년반 동안의 연구를 끝낸 박정희는 1967년 5월에 경부고속도로 건설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지만 발표만 있고 진행상황은 전혀 없이 5개월이 흐른 10월하순 어느날 박정희는 "늦어도 내년초에는 착공한다. 기존 국도를 확장하는 것도 좋고, 전혀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도 좋다. 구체적인 안을 수립해 보고하라" 우여곡절끝에 건설계획안을 확정할 국가기간고속도로 건설계획조사단이 12월 15일 발족하여 대단원의 막이 올랐다. 이때 김대중은 공사 저지를 위해 필사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마침내 1968년 2월 1일 4백28km 대장정의 첫 삽질이 시작됐고 공사는 2년반만인 1970년 7월 7일 부산까지 전노선이 완공됐다. 이 공사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사람은 77명이었다. 7월 7일이 77명과 같다고 하여 갖가지 루머가 떠돌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사상 첫 고속도로 개통이었다.
이와 함께 박정희가 앞장서 팔을 걷어붙이고 경제개발에 나설 당시 중용됐던 관료들은 대부분 젊은 30대 나이였다. 박정희는 이들의 패기를 적절히 살려주었고, 그 때문에 시행착오를 겁내지 않고 밀어부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박정희의 강인한 의지의 기반으로 지금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만일 지금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를 한다면 반대파의 방해와 저지로 실천에 옮기지 못했을 것은 자명하다. 북한은 미사일과 핵무기로 연일 남한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방어용 ‘사드’ 조차 집단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독재도 유익할 때가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북한도 독재가 아니면 핵무기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김일성은 생존시 외신기자에게 “내가 자본주의를 할 줄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탐욕과 부패로 모든 인민이 골고루 살 수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김일성이 인민은 굶어 죽어도 아들, 손자만 대대로 인민을 노예처럼 취급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보면 우스꽝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