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상(權禹相) 연재소설 - 봉이 김선달 제1부 열 번째회 (10)
봉이 김선달
“ 여보! ”
김선달金先達 마누라는 동네 여자들을 모아 놓고는 남편을 불렀다.
“ 이제 우리는 우리가 할 일을 시작할 터이니 당신은 가셔서 소경(장님)들을 불러 오구려 ”
“ 으음. 그렇게 하지. 내가 동문 밖에 다녀 올테니 그동안 준비나 잘 해 놓게 ”
김선달은 두루마기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한편 동네 여자들은 김선달이 지어 놓은 원두막 밑에 깨진 그릇 조각을 주워다 수북히 쌓아 놓은 후에 옆에는 큰 가마솥 두껑을 걸어 놓고 불을 피워 돼지 비계(기름)를 그 위에 올려 놓으니 돼지 비계가 더운 열기에 지글지글 끓기 시작하면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었다.
“ 아유 기름 냄새에 시장기가 느껴지네 ”
“ 글쎄. 제법 큰 잔치라도 하는 것 같구만.. ”
“ 이 기름 냄새를 맡기만 해도 그 구두쇠 소경들은 군침을 흘리겠구만.. ”
여자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면서 소경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집을 나선 김선달金先達은 그 길로 곧장 동문 밖 소경들의 집으로 향했다.
“ 요놈의 봉사들. 어디 나한테 한번 당해 봐라! 똥구멍에서 설사를 좔좔 싸도록 해 줄테니.....”
마음속으로 고소한 생각을 금치 못하면서 동문을 빠져나온 김선달은 소경들의 집 앞에서 목청을 가다듬어 점잖게 불렀다.
“ 박소경님 계십니까? 박소경 계십니까? ”
김선달金先達은 소경(장님)들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 격인 박소경을 불렀다.
“ 누구십니까 ? ”
박소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 허허. 김선달이가 문안드리러 왔습니다. 봉이 김선달입니다 ”
“ 아이구. 선교리 봉이 김선달께서 오셨다구요? ”
“ 어서 올라 오십시오. 이거 오늘은 웬 일이 십니까? ”
소경(장님)들은 보이지 않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목소리만 듣고 김선달을 맞았다.
“ 제가 어른들께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 오늘이 제 귀가 빠진 날이라 그냥 지내기가 섭섭해서 비록 소찬일망정 여러분과 같이 술과 음식을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모시러 왔으니 꼭 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 허허 그래요 ”
생일 잔치에 초대하러 왔다는 소리를 듣고 장님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감돌았다.
“ 자. 그럼 어서 가십시다 ”
김선달金先達은 서둘렀다.
“ 이건 미안스러워서 어쩌우... ”
“ 미안 하긴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제 성의이니 어서 가시지요 ”
이렇게 해서 김선달은 소경 일곱 명을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자 기름 냄새가 자꾸만 코를 간지럽혔다.
“ 허허. 봉이 김선달이가 돈을 좀 벌었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생일잔치를 아주 성대하게 차리는 모양이구만... ”
“ 워낙 돈버는 재주꾼이라 생일 잔치도 호화스러울 걸세 ”
소경들은 돼지기름 냄새만 맡고도 벌써부터 입맛이 당기는지 이렇게 소곤거렸다.
“ 여보! 동문 밖 소경 어른들이 오셨으니 어서 자리를 만드시오 ”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김선달은 크게 소리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