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매일같이 만나고 보던 얼굴들을
오늘 이렇게 뵈니 마음이 더욱 더 새롭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바쁘신 와중에서도
이렇게 저의 명예 퇴임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특히, 오늘 이 영광스러운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남유진 시장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료 및 후배 공무원 여러분!
저는 이제 오늘,
지난 36년간 제 평생을 몸담았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미 예정된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지난 일 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 가며 세월의 무상함과
허전한 마음이 마음 한 구석에
물 밀 듯이 밀려오는 게 제 솔직한 심정 입니다.
잠시 저의 지나온 공직 생활을 되돌아 보면,
오로지 젊은 청춘 하나만이 밑천이었던 저의 첫 발령지는
부산시 중구청 동광 동사무소 였습니다.
그 곳에서 금릉군, 지금의 김천시 아포면을 거쳐
현재 선주 원남동인 구미시 원남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공직생활이
35년 2개월 22일 이란 세월이 흘러 갔습니다.
첫 근무지인 부산 동광동 시절에는 월급이 하숙비 보다 도 적어
동사무소에서 출․퇴근 없이 먹고 자며 근무했던 시절^^.
그리고 아포면 근무 시에는 저의 집이 선산이라 교통 수단이
불편해 자전거 2대를 놓고 (그것도 자전거 뒷 자석에는 도시락을 싣고)
감천 배신 냇가를 건너 다녔고.
특히, 겨울에는 목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그 차가운 강물을 건너 출․퇴근하던 그 순간들이 지금도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그 당시 제가 아포면 근무시 갓 여고를 졸업하고 농협에 근무하는
저의 집사람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은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요
우리 장모님이 면 서기에게는 절대로 우리 딸을 줄 수 없다고 해서
제가 그래서 구미시로 오게된 동기 중 하나 였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좋아서 함께 잘살아 보자고 했던 그 때
아내의 나이가 22살이 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흘러 아내의 머리 전체가 하얗게 되어 버였습니다
(** 그 맑고 청춘의 상징인 검은 머리은 다 어디로 가는지??)
지금 모습을 보니 이제껏 잘 해 주진 못하고
고생만 시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집니다(* 괜히 마음이 좀 울컥해 집니다)
갑자기 시 한 구절이 엇뜻 생각이 나네요
김춘수 시인의 시 <꽃> 중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라고 처럼
그 동안 불러 보지 못했던 그 이름 한번 불러 보고자 합니다.
태형이 동현이 두 아들의 엄마와 나의 아내인 김영미 여사님...
*** 사랑한다기 보다는...그냥...앞으로도 쭈욱 좋아 하겠다고요
또한, 늘 제 주변에서 많은 도움과 힘이 되어 주었던 우리 친지 가족들,
특히, 금년도 여든 네살(84)이 되신 우리 어머님, 그리고 우리 형제자매들!
그리고 동내 고향 친구, 동기 등 모든 분들
오늘이야 와서 이렇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 봅니다.
그 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모두들 사랑 합니다
이제 퇴직하고 나가면 남은 인생 그 동안 못다 한 것,
가족들과 주위 분들에게 베풀면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약속을 드려 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동료 및 후배, 공무원 여러분!
제 공직생활 중 잊혀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원남동에 근무하던 총각 시설, 휴일마다 새마을 모자 쓰고 리어카를 끌면서
금오천에서 풀을 벨 때, 참다 참다 동장님께
제발 일요일만 안하면 안 되느냐고 하며
총각들 장가도 못가겠다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 적도 있었고요
또, 사무관 진급 후 첫 해평 면장으로 근무시,
5공단 조성과 관련해 마을 단위로 순회하면서 주민들을 만나던 일,
읍면 농업분야를 관장하는 내 고향인 선산 출장소장 시절,
그리고 구) 금오공대 자리를 오늘날 금오테크노 밸리로 조성하기까지
밤낮 없는 대책 회의와 또 중앙부처를 방문했던 일,
또, 지난 8월, 구미시 시내 버스 노선 전면 개편
그리고
아직도 해결하는 못한 시청 앞 근로자 문제 등 수많은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그리운 얼굴들이 될 동료 및 후배 공무원 여러분!
이제 저는 지난 36년, 기쁨과 눈물을 함께 했던 공무원 신분을 벗고
너무도 자랑스럽고 소중한 여러분들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힘들 때나 좋을 때나 여러분들과 동고동락했던 시절과,
늘 저에게 보내주신 끈끈한 정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소중한 인연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옛 말씀에
“세개무상(世皆無常) 회필유리(會必有離)”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덧 없고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이 헤어짐 뒤에는 또 다시 만남이 있다는 것 처럼.
언젠가는 또 다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구미시는 탁월하신 남 유 진 시장님과
1,600여 명의 공무원의 열정 있어
43만 구미 시민과 더불어 더 살기 좋은 명품도시가 될 것으로 확신을 합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자기 길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지난 그 동안 저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나름 대로 의미있는 삶의 여정을 걸어
왔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 하려고 합니다.
누군가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
이라 했습니다. 새로운 제 삶이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도록
저는 제 2의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 동안 저에게 따뜻한 사랑과 우정을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과
부족함이 많은 제가 큰 허물없이 무탈하게 공직생활을 마무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기원 드리면서.
그 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 또한 의회 임춘구 전 의장님 의원님 시의원님들 이홍희, 이태식, 구자근, 도 의원님
◎ 류한규 상의 회장님 비롯한 기관단체, 중소기업 회장님들
◎ 각 대학교 산학 협력단장님들
◎ 원종도 한국노총 의장님,
◎ 그리고
고향 친구들, 중학교ㅡ고등학교 친구들 나가자 회원,
◎ 내가 살던 도시주택 4동 주민들
◎ 그리고 우리 가족 친지 이금구 외갓집 형님, 조카들 또한 우리 처제들
◎ 특히, 고향 내고 1리 이장님 주민, 우리 어머님 친구분들
◎ 여러분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