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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연재

특집-옛날 설의 모습과 지금은

권우상(명리학자, 역사소설가)

 
농경시대의 설 모습은 우리 민족 고유의 설 모습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설날이 임박한 2 - 3일전이면 집집마다 떡방아를 찧고 가마솥에 쌀, 들깨, 콩 등을 뽁아서 엿기름을 버물어 방망이로 밀어 강정을 만들고 식혜를 빗는 등 여인네들은 설음식 만들기에 분주하며, 남자들은 돼지나 닭을 잡기도 한다. 그야말로 명절 냄새가 물씬 풍기는 즐거운 모습이다.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뻥튀기 하는 기구가 생겨났고, 어느 집이나 뻥튀기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쌀, 옥수수, 콩 등을 자루에 넣어서 아이들이나 아낙네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곤 했는데, 어떤 때는 긴 행렬이 백여 미터나 늘어서 있기도 했다. 또한 떡국을 먹기 위해 집집마다 가래떡을 빚기도 했는데, 떡방아간 앞에는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설날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며칠전부터 잠을 설쳤다. 모처럼 입어보는 새 옷과 새신발을 신고 집안 어른들에게 새배를 하면 새뱃돈을 얻는다는 기쁨에 한껏 젖어 있었다. 아버지가 장에 가서 옷과 신발을 사오기 때문에 아이들은 장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년에 한번 돌아오는 설이 와야 새 옷과 새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다.

두부장수도 설날이 다가오면 한 몫을 했다. 새해에는 떡국을 먹었는데 떡국에는 반드시 두부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두부가 불티나게 팔렸다. 어떤 집에서는 이웃끼리 공동으로 두부를 만들기도 했는데, 콩을 멧돌에 갈아 가마솥에 끓여서 자루에 퍼담아 비지를 걸러낸 후 콩물에 간수를 쳐서 응고시킨 후 나무상자에 퍼담아 큰 돌로 눌려 놓으면 두부가 되었다. 이렇게 만든 부두는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훈훈한 정을 다졌다.

 
설날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답게 모든 사람들에게 풍성함과 즐거움을 주는 새해의 큰 행사였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설날 만큼은 이웃과 친지들이 풍성하게 차린 음식상 앞에 둘러 앉아 차례를 지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덕담을 나누고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즐겁게 지냈는데 이것이 우리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이다.

민속놀이로서는 어른들은 두 팀으로 나누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윷놀이를 했으며, 진 쪽은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쪽에게 대접을 하였고, 아이들은 팽이를 돌리거나 제기차기와 연날리기를 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은 긴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고 널뛰기를 했으며, 남자 아이들은 한복 차림에 제기를 차거나 연(鳶)을 날리기도 했는데, 연(鳶)을 높이 띄워 연줄에 상대방의 연줄을 감아 당기면서 연(鳶) 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 민족만의 행사로 인정과 정겨움이 물씬 풍기는 명절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설날 아침에는 복조리를 팔려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복조리 사려’ 하면서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 아낙네들이 복조리를 샀다. ‘복조리’란 그 당시에는 쌀에 섞인 돌을 가려내기 위해 쌀을 물에 씻으면서 ‘조리’라는 기구를 사용했는데, 설날 아침에 ‘복조리’라고 외치고 다니는 ‘조리’를 사서 아침마다 밥을 할 때 쌀을 일면 복(福)을 받는다고 해서 ‘복조리’라고 했다. ‘복조리’는 방문 앞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써붙인 글자 옆에 매달아 놓아 한 해 동안의 복(福)을 기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옛날 설의 모습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설이 되면 고향을 찾는 이른바 ‘민족대이동’은 옛날의 명절과 크게 변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자동차가 희귀품인 시절이라 설 명절이라 해도 고작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동네에 사는 친척들에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새배하려 가는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전국이 일일 생활권이 되면서 ‘민족대이동’이라는 새로운 풍경이 등장했다.

요즘 아이들은 늘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신발을 신고, 사시사철 영양이 좋은 음식을 먹기 때문에 설 명절이라고 해서 특별한 옷이나 신발, 그리고 음식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정서적인 면에서는 옛날 아이들과 같은 설날의 즐거움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주는 새뱃돈 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시대에 따라 50년 후 또는 100년 후에는 설 명절의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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