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려운 경제에서는 절약하여 극복하자
권우상
사주추명학자. 역사소설가. 극작가
경제가 어려우면 왜 절약해야 하는가? “돈을 아끼는 건 정말 따분한 일이다. 그보다는 옷이나 전자 기기와 같은 걸 사는 게 훨씬 재미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의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말이다. 당신이 세계 경제의 침체로 영향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돈을 절약하고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유익하다. 성서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경제 문제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된 조언이 들어 있다. 오늘날 노사의 관계가 원만하게 이뤄지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화목한 분위기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회사도 있다. 우리 사회는 일을 시키는 회사나 일을 하는 노동자나 상대적으로 깊은 관계가 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무량한 복덕을 구족하여 이만큼 유족하고 높은 지위에 올랐으니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내 밑에서 복종해야 한다면 잘못이다. 과거 70년대 산업화의 열기를 타고 작업 환경이 열악한 회사에서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체의 사주는 그렇게 생각하고 노동자를 흑사하거나 임금을 착취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기업은 생존하기도 어렵고 생존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임금을 착취나 열악한 노동환경 기업은 거의 없다. 사람은 많이 가질 수도 있고 아무것도 갖지 못할 때가 있다. 많은 것을 가졌을 때 뽐내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비굴해져서는 안된다. 이 세상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과 몸을 가리는 옷가지만 있으면 최상의 행복이라고 했다. 분에 넘치는 풍요는 고통의 씨앗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불가에서는 부자가 사람을 부릴 때 덕으로써 봉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하러 왔더라도 그 사람의 능력이 무엇인가를 미리 살핀 후 일을 시켜야 한다. 힘이 없고 기술이 없는 사람에게 석축(石築)의 일을 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농사일을 할 줄 아는가? 양잠 기술이 있는가? 등등 그 사람의 능력을 고려하여 일하도록 하여야 하며 그 집에 고용되면 모든 침식을 제공하고 급료, 질병, 휴가 등 후생을 적극적으로 보살펴야 한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이러한 내용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복지사회 그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경기의 불황으로 나날이 서민들의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집값이 하늘 모르게 치솟는가 하면 학원비와 대학등록금 등 교육비의 부담이 가중돼 우리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사람이 하루 먹고 사는 절대량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옛날 스님들은 서흡밥을 먹으면 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요즘 식당에서는 먹는 음식보다 버리는 음식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음식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절약은 미덕이란 말이 있다. 아낀다는 것은 인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색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것으로만 만들고 남에게 주는 마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하루를 살아도 남과 더불어 살 수 있는 마음을 앞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불가에서는 보시(布施)라는 이행으로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돕게 한다. 물건이 필요하면 물건으로 베푸는 재보시(財布施)가 있고,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지식을 베푸는 법보시(法布施)가 있다. 그리고 한 단계 높인 것으로 무외시(無畏施)가 있다. 이것은 정신 안정을 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에게 안온과 편안을 누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찾는데는 혈안이 되어 아우성치고 있지만 남을 위해 베푸는 데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특히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보시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흔히 절약을 미덕이라고 한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살아가려고 저금을 하거나 저축을 하는 마음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너무 지나치게 낭비를 하거나 과욕을 부리면 그 사람의 살림은 끝장이 날 것이다. 목표를 설정하고 자기 일생을 정당하고 거룩하게 살려는 마음을 앞세우고 살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의 생활은 깨끗한 마음과 올바른 행동으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괴롭히는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목표가 거룩하지 못한 일들을 정해놓고 덮어놓고 돈만 벌면 되고, 힘만 있으면 되고, 지위만 높으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함으로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시작이 나쁘기 때문에 그 결과도 좋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겉보기에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데 하는 행동은 잘못하는 사람이 이거나 마음 또한 깨끗하지 못하고 보면 우리는 이러한 것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양무제가 보리달마에게 묻기를 “나는 절도 많이 세우고 탑도 많이 세워서 불교의 일을 많이 하였으니 그 공이 얼마나 되는가?” 하자 스님은 “아무 공덕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현시욕이나 자기 선전을 위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속마음을 키우는 일이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참다운 마음의 행동자로서 오늘을 살고 있는가 반성해야 할 것이다.